조선어

영원한 친선의 메아리 - 천생 방송인 백일승씨 인터뷰

criPublished: 2021-12-02 19:25:07
Share
Share this with Close
Messenger Pinterest LinkedIn

【백일승】“1997년7월에 중국국제방송국이 석경산구에 있는 새 사옥으로 이전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 방송이 전통적인 아날로그 방송에서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하는 전환의 시대에 진입했습니다. 그런 기술적 여건에서 우리 방송의 모든 임직원들이 다양한 업무영역을 개척하고 확장해나갔습니다.”

1998년 뉴스 생방송 개시를 시작으로 수도권 FM방송, 공식 사이트 개통에 이르기까지 조선어 방송에 획기적인 변화가 발생하였다.

【백일승】“1998년11월에 원래 전부 녹음방송이였는데 뉴스생방송을 개시했고 1999년3월에는 베이징 수도권 FM방송을 개시했으며고 1999년12월에 우리 공식사이트를 개통했습니다. 우리 방송은 이로해서 마침내 대외, 대내 방송에 사이트까지 다양한 미디어 형태를 가진 그런 방송부서로 성장하게 됐습니다.”

1999년12월 조선어 방송 공식사이트 개통 순간

수도권 FM방송을 하면서 국내에서 조선어방송의 위상이 크게 향상했다. 한국 방송사와 공동 제작한 프로그램은 베이징 수도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또한 공식 사이트 개통으로 라디오 수신기로만 방송을 청취하던 데로부터 인터넷으로 방송을 청취할 수 있게 되면서 청취자가 크게 늘었다.

【백일승】“중국 지도자들의 조선방문 또는 한국 방문, 그리고 상대국 수반의 중국 방문 이런 행사들을 많이 취재 했었는데요 출국 방문을 보면 1990년 중국 당과 정부 대표단의 조선방문, 그리고 1991년 중국 이붕 총리의 조선방문, 1992년 중국 양상곤 국가주석의 조선 방문 이런 행사들을 제가 수행취재했습니다. 또 1991년 조선 김일성 주석의 중국방문, 1993년 노태우 한국 대통령의 중국방문, 1994년 김영삼 (한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 그리고 1998년 한국 김대중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런 행사들을 제가 수행취재를 했었습니다.”

1990년베이징아시안게임취재기자로활약

그 당시만 해도 핸드폰도 없었고 실시간 통신이 어려운 시절이였다. 취재 기사는 고정전화 또는 특별전송코너를 통해서만 국내로 전송 가능했다. 특히 국가수반 수행 취재는 상당한 책임감과 의무감이 동반되는지라 한번 취재를 나갔다오면 본의 아니게 다이어트가 되었다.

【백일승】“지금 돌이켜 보면 그 나날들이 너무나 보람스럽게 느껴집니다. 중국, 조선, 한국의 정상들을 지척에서 바라볼수 있고 이런 중요한 행사들을 현장에서 취재했다는 것을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2005년조선어방송55주년기념대회

首页上一页1234全文 4 下一页

Share this story on

Messenger Pinterest Linked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