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

영원한 친선의 메아리 - 천생 방송인 백일승씨 인터뷰

criPublished: 2021-12-02 19: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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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한국어) 국제방송에 대한 한없는 열정으로 방송에 대한 노래를 만든 백일승 씨, 40년 가까이 방송인의 외길을 걸었다.

【백일승】“우리 방송이 꼭 35주년이 되는 1985년에 입사했습니다. 지방대학을 졸업하면서 저는 ‘촌놈’이라고 할까요 수도 베이징에 있는 중국국제방송국 국가방송사에 뽑혀서 입사한다는 것은 저에게는 대단한 행운이였고 영광이였습니다. 그때는 디지털 시대가 아니였기때문에 매일 일과가 좀 많이 어려웠어요. 타자기로 타닥타닥 매일 원고를 만들었고 또 녹음테이프를 안고다니면서 녹음하던 시절이였습니다. 지금도 그 타자기와 녹음테잎이 가끔 기억이 날때가 있습니다”

재래식녹음테잎이가득했던아날로그시대의스튜디오

1985년 중국국제방송국에 입사해서부터 최근 은퇴할 때까지 백일승 씨는 40년 가까이 오로지 방송인의 외길을 걸어왔다. 그 세월 속에 조선어(한국어) 방송이 타자기로 기사를 작성하고 녹음 테잎에 프로그램을 녹음하던 재래식 녹음방송에서 디지털 라디오 방송, 뉴미디어, 멀티미디어로 발전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또 함께 했다. 백일승 씨는 아나운서와 기자, 번역 편집, 제작편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섭렵하면서 베테랑 방송인으로 되었고 그 과정에 조선어부 부주임, 주임, 동북아남아시아센터 부주임, 동북아중아시아센터 부주임을 역임하였다.

프로그램녹음중인백일승씨

【백일승】“입사해서 몇년 간은 선배님들의 가르침 속에 방송을 배우고 익히느라 겨를이 없던 나날들이였습니다. 아나운서의 화술실력을 높이기 위해서 (아나운서들이) 1984년부터인가 조선중앙방송위원회에 가서 방송화술연수를 하게 됐습니다. 저도 1987년에 조선중앙방송위원회에 가서 조선 인민방송원으로부터 화술지도를 받은적이 있습니다.”

백일승 씨가 입사한 1985년은 온 나라가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던 그런 시대였고 조선어방송도 기사에서 프로그램 편성에 이르기까지 오래동안 유지되던 고정적인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또 새롭고 변화된 방송을 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방송도 번영발전의 시대를 열어갔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방송기술이 도약적으로 발전했고 컴퓨터가 일상화되기 시작하고 인터넷이 나타났다. 이 무렵 백일승 씨는조선어방송의 부서장을 지내면서 다양한 혁신을 시도했다.

1990년대중반조선어부임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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