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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키워드] 인재의 양성

criPublished: 2023-05-23 10: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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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위성의 아버지’ 쑨지아둥의 우주 이야기

소행성에이름을붙인중국의과학자들중한명이바로중국의달탐사를주도한우주항공과학자쑨지아둥이다.1958년에미사일연구를시작해서중국의첫인공위성발사,베이더우(北斗)위성항법시스템발사에이르기까지쑨지아둥은줄곧중국의우주항공발전과함께했다.그리고2012년우주에쑨지아둥별이떠서쑨지아둥은중국의우주과학자로서영원히세계를비추고있다.

1929년에 태어난 쑨지아둥은 1948년에 하얼빈 공업대학에 입학해 자동차를 전공했으며 1951년에 국비로 구소련으로 유학을 가서 항공기 엔진을 전공하고 1958년에 귀국했다. 그로부터 쑨지아둥은 우주항공 연구에 뛰어들어 평생을 바치며 중국공간기술연구원의 원장과 우주항공 공업부 차관, 우주항공 공업부 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등 직무를 역임했다. 쑨지아둥은 또 1992년에 중국 과학원 원사로 선거되었으며 2004년 중국 달 탐사 공정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었다.

오늘날 세상을 비추는 별이 된, 온 세상이 잘 아는 중국의 과학자 쑨지아둥이지만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중국 국방부의 한 연구소에서 운반 로켓 연구를 시작할 때는 그의 아내조차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심지어 아내가 임신하고 첫 아기를 출산할 때에도 쑨지아둥은 중국 최초의 인공위성 연구제작으로 아내의 곁을 지키지 못하고 여전히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평생을 중국의 우주항공에 바치고 중국의 미래를 연구했지만 그의 아내와 이웃들은 매일 열심히 연구소에 나가는 그를 일반 출근족으로만 알았다.

쑨지아둥이 수석 디자이너를 맡고 중국이 독자적으로 연구 발사한 우주항공 비행체만 해도 34개에 달한다. 중국이 발사한 100여개의 우주항공 비행체 중 1/3이 그의 손에서 완성되었다. 쑨지아둥은 나날이 새로운 모습으로 우주를 향해 발사되는 이런 비행체들을 성장하는 자신의 아이로 보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쑨지아둥을 중국 위성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중국의 첫 인공위성이 우주로 날아 올라가고 많은 상을 타면서도 쑨지아둥은 아내와 그 기쁨을 나누지 못했다. 그러다가 1985년 10월 중국 우주항공이 방송을 통해 중국의 운반 로켓이 세계로 나아간다고 선포할 때 쑨지아둥은 방송에 출연해 처음으로 자신이 하는 일을 세상에 알렸고 그 때에야 그의 아내는 방송을 통해 30년을 자신과 함께 한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았다.

중국의 인재 정책은?

중국은 위안룽핑과 쑨지아둥 등과 같은 세계적인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적극적인 인재 정책을 펼치고 있다.

첫째, 중국은 혁신에 의한 성장 견인 전략을 시행하고 ‘대중 창업과 만중 혁신’ 추진의 배경에서 ‘혁신체계’와 ‘세수 정책의 최적화’ 등 창조의 활력을 유발하고 혁신 기업을 발전시키는 정책적 조치를 출범해 인재의 혁신과 창업을 격려하고 있다. 이런 인재 정책은 특히 고급 인재들의 혁신 창업을 크게 격려해 신용대출과 세수, 임대 등 분야에서 아주 큰 혜택과 편리를 제공한다.

둘째,인재정책의개방정도를향상시키고있다.일례로2015년상하이(上海)는관련정책을출범해외국인의그린카드신청조건과절차를간소화했으며중국의외국인유학생들이졸업후직접상하이에서취업하도록했으며외국인고급인재들이상하이에서근무하고생활하는데편리를제공했다.베이징(北京)과광저우(廣州)에서도상하이와마찬가지로적극적이고개방적인해외인재유치정책을시행해내외의우수한인재들에대한유치강도를강화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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