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

운강석굴, 화합의 메세지를 전하다

criPublished: 2023-10-11 10: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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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중흥시켜 국민의 마음을 한 곬으로 모으려 했던 지배층의 목적이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그 뿐이 아니다. 이곳의 조각상과 벽화를 보게 되면 물론 보존상태가 상이하지만 아직도 색채가 현란하고 조각이 완전하게 보존된 경우가 적지 않아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천 년이 넘는 세월을 고스란히 견뎌 우리 앞에 펼쳐진 불교예술, 그 중에는 인도와 중앙아시아 예술회화기법이 있는가 하면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조형과 장식문양도 들어 있다.

한마디로 동서양의 회화와 건축을 완벽하게 접목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문명은 서로의 연관속에서 발전하고 상호 영향을 주었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석굴과 관련된 숫자를 보기로 하자. 서기 398년에 북위가 다퉁(당시 평성)에 도읍을 옮긴 후 석굴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된다. 그 작업은 150년 정도 이어지고 덧없이 왕조가 바뀌면서 그 동안 북위, 동위, 서위,북제, 수, 당 왕조가 선후로 이 땅을 통치하고 이름 또한 여러 번 바뀐다.

그러나 이 동안에도 돌산을 깎아 석굴을 만들고 그 속에 불상을 조각하고 모시는 작업은 계속되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주요한 석굴은 45개, 석조조상은 5만9천여존이나 되어 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값진 보물로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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