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족의 역사
1244년 가을, 몽골 종왕 활단이 몽골 조정을 대표해 티베트 활불 샤자반지다와 ‘양주회맹’를 가졌다. 1271년 몽골대한 쿠빌라이가 통일된 원나라를 세우며 국호를 ‘원’으로 정하고 티베트지방도 정식으로 중국중앙정부의 직접적인 관할에 편입되었다. 원나라 초반 최초로 중앙기구총제원을 세워 전국 불교사무와 티베트 등지의 군정사무를 관할 했다. 중앙기구총제원은 1288년에 선정원으로 개명했다. 원나라는 티베트에 역참을 세우고 세금을 징수했으며 군대를 주둔시키고 관원을 임명하고 티베트에서 원나라의 형법과 역법을 시행했다. 또 티베트족의 승려들을 중앙과 지방의 고위급 관리로 임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티베트 지방의 행정구역을 세 지역으로 획분해 선정원의 직접적인 관리를 받도록 했다. 이는 그 후 티베트 행정구역 획분의 기반이 되었다.
기원 1368년, 명나라가 원나라를 대체하면서 티베트 지방정부에 대한 국가주권도 함께 이어받았다. 명나라는 원나라의 관직제도를 잇지 않고 승려를 관리로 임명하는 제도를 실시했다. 각 지역에 대표적인 정교수령이 있다면 명나라는 각이한 명호를 책봉해 그들이 각자의 지방을 관리하도록 했으며 그 직위의 승계는 반드시 황제의 승인을 거치도록 했다. 행정구역과 군정기구의 설치에서 명나라는 원나라의 방식을 계승해 각급 군정기구 관원은 현지의 승려 수령이 역임하도록 하고 각급 관원의 임명과 승진은 명나라 조정이 직접 결정하고 책봉했다.
청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티베트족 지역은 중앙정부와 보다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청나라 정부는 중앙에 이번원을 설치해 티베트와 몽골지역의 사무를 관리하도록 했으며 티베트 불교 황교의 양대 생불을 달라이 라마와 판첸 어르더니로 책봉했다. 또 달라이 라마를 대표로 하는 황교세력을 지원해 티베트에 대한 중앙의 직접적인 관리를 보강했다. 1725년 청나라는 서녕에 사무대신을 두고 2년 뒤 라싸에 티베트 주재 사무대신을 두었다. 1751년 청나라는 티베트에 갈하 정부를 세우고 티베트에 대한 지방관리권을 달라이 라마에게 정식 위임했다. 이로써 정교합일의 제도가 정식으로 확립됐다.
1792년 청나라는 티베트에 침입한 곽이객군을 물리치고 티베트지역의 관제와 군제, 변방, 재정, 사법, 호구, 차역과 섭외 사무에 대해 상세하고 구체적인 규정을 내렸으며 티베트 주재 대신이 티베트 정무를 관리하는 직권을 확립했다. 청나라 정부는 각 민족이 잡거한 서북과 서남의 티베트 지역에도 서녕 사무대신과 사천총독을 파견해 직접적인 통일 관할을 했으며 관리방법도 원나라와 명나라의 토사제도를 계속 사용했다. 그리고 후에는 서남 티베트족 지역에서 토사제도를 유관제도로 개혁했다.
아편전쟁이후 티베트 지역은 영국과 제정러시아, 프랑스, 일본의 각축장이 되었다. 1888년 영국침략군이 티베트 융토산에 대해 무력침공을 감행했고 티베트 지방정부는 티베트군을 파견해 영국군과 치열한 전투를 진행했다. 1904년 영국군은 또 다시 티베트의 쟝즈지역을 침입하고 한때 라싸를 점령하기도 했다.
신해혁명 후 북양정부는 베이징에 몽골과 티베트 등 소수민족 지역의 지방사무를 관리하는 전문적인 행정기구를 설치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되면서 중앙인민정부는 티베트의 역사와 현실에 따라 티베트 평화해방 방침을 결정했다. 1951년 중앙인민정부는 티베트평화해방의 일련의 문제와 관련해 티베트정부와 합의를 달성하고 ‘티베트를 평화적으로 해방할데 관한 중앙정부와 티베트 지방정부의 협의’를 체결했다. 1954년 달라이라마와 판첸 어르더니가 함께 베이징에 와 중화인민공화국 제1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해 각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과 위원으로 당선되었다. 1956년 티베트자치구 준비위원회가 설립되고 달라이라마가 티베트자치구 준비위원회 주임위원으로 취임했다.
1965년 9월 티베트자치구가 정식으로 창립되면서 티베트는 민족구역자치제도를 전면 실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