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

티베트족의 역사

criPublished: 2022-10-08 15: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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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족은 자신의 언어와 문자가 있다. 티베트어는 한어-티베트어계 티베트-미얀마 어족 티베트어 갈래에 속하며 세가지 방언으로 나뉜다.

중국인들은티베트족을한어로‘장족’(藏族)이라고부르지만이들은자신을‘번’(番)으로자칭한다.서로다른지역에거주하는티베트인들의자칭도각이하다.티베트아리지역인들은자신을‘두이바’,시카제지역티베트인들은자신을‘짱바’,산난지역의티베트인들은자신을‘워이바’,티베트동부와청해서남부,사천서부의티베트인들은자신을‘캉바’,티베트북부와사천서북부,감숙남부,청해의티베트인들은자신을‘안둬바’라고부른다.바는티베트어로‘사람’이라는뜻이다.

티베트족에 대한 타칭도 아주 많다. 당나라와 송나라 때에는 ‘토번’ , 원나라 때에는 ‘토번’, ‘서번’, 명나라와 청나라 때에는 ‘서번’, ‘장번’, ‘장인’ 등으로 불렀다.

티베트족은최초로야루장부강유역중부지역의한농업부락에서기원되었다.고고학발견에따르면4천여년전티베트족의선조들이야루장부강유역에서생활했다.한문사서의기재에따르면티베트족은서한과동한시기서부챵인(羌人)의한갈래이다.그후야루장부강남안야룽지역의티베트족선민들이6부로나뉘고기원6세기야룽부락두령이부락연맹의수령이되어왕인‘잠보’로지칭하며노예제사회에진입했다.

티베트문 사서의 기재의 따르면 토번 왕실의 시조는 티베트 산남지역의 야룽계곡에서 굴기해 ‘여섯 야크’부락의 수령이 되고 송찬간포 전에 이미 20여 대를 이어왔다.

기원 7세기 초, 당나라가 강대한 통일 정권을 세우며 300여년간 이어져온 혼란과 분열의 국면이 막을 내렸다. 이 때 티베트족의 민족영웅인 송찬간포도 10여개 부락과 부족을 통일하고 청해-티베트 고원을 통일해 정식으로 토번왕조를 건립하고 뤄써, 지금의 라싸에 수도를 정했다. 송찬간포 재위기간 당 나라와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 당나라의 선진적인 생산기술과 정치문화 성과를 따라배웠다. 기원 641년 송찬간포는 당태종의 종녀 문성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며 당나라로부터 술 양조기술 등을 인입했으며 귀족의 자제들을 장안에 파견해 공부시키고 한족 문인들을 토번으로 초청하기도 하며 당나라와 정치, 경제, 문화 등 면에서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당고종은 송찬간포를 ‘부마도위’, ‘서해군왕’에 봉하고 후에는 ‘빈왕’으로 봉하기도 했다.

기원710년당나라의금성공주가토번왕적덕조찬에게시집갔다.기원821년에는토번왕적열파건이세차례장안에사절을파견해회맹을청구했으며당목종은재상등관원들에게명해장안서쪽교외에서성대한회맹식을갖도록했다.이듬해당나라는류원정등을토번에파견해라싸동쪽교외에서회맹식을가졌다.사서는이를“장경회맹”(长庆会盟)이라고기재하고있다.그후300-400여년간티베트족은북송과남송,서하,요,금등정권과줄곧긴밀한연계를유지해왔다.

기원 842년, 토번왕조가 왕실 내란과 부족간 혼란으로 분열,와해되며 수많은 지방세력이 속출했다. 서로 정벌하고 전쟁을 발동한 이런 국면이 약 400여년간 이어졌다. 한편 기원 10세기부터 12세기까지 티베트불교가 티베트족 각 계층에 받아들여지고 티베트족 사회에 깊이 침투되면서 불교계 상류층과 현지 수령이 상호 결탁하고 이용하기 시작하고 티베족의 역사는 정교합일의 봉건체제에로 나아갔다.

송나라와 금나라 때 티베트족 각 지방 정권은 다시 중앙정권과의 연계를 강화하기 시작했다.이 때 일부 지방 수령들이 중앙정권의 채공을 받기 시작하며 한족들과의 무역이 크게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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