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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미족의 세시풍속과 금기

criPublished: 2021-03-03 17: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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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풍속:

푸미족은 1부1처제가 위주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전 푸미족은 씨족 외 혼인제를 실시했으며 통혼 가능 범위에 대한 요구가 엄격해 일반인들은 노예와 결혼할 수 없었고 귀족과 평민간의 통혼도 허락되지 않았다. 또 결혼 연령이 비교적 일러 여자는 15세, 남자는 18세면 대부분 결혼했다. 가끔 남녀 13세에 성인식을 치른 후 결혼하는 경우도 있었다.

푸미족은 과거 청년 남녀가 자유로이 교제 할 수는 있었으나 배우자는 부모가 선택해주었다. 많은 푸미족은 13세 이전에 쌍방의 부모가 협상으로 혼인을 약정하며 일부는 금방 태어나거나 한 돌이면 혼약을 정하기도 했다.

푸미족은보통한가한섣달에결혼식을많이치렀다.양가가약혼주를마시고나면남자측에서돼지와닭을잡으며중매인이돼지심장을남자측의예물로여자측에전달한다.여자집에서도돼지를잡으며양가의돼지심장을모두반으로자른후그절반을남자집에보내“영결동심”(永結同心),백년해로의뜻을밝히고결혼식을올린다.

난평과유서일대의푸미족은결혼식날“대가”(對歌)를즐겨부른다.남자측의영친대오가여자집에도착하면신부집대문은굳게닫혀있다.이때중매인이양가의혼사가하늘의뜻이라며노래를부르는데여자측은그노래가마음에들면대문을열고영친대오가보낸예물과축의금을받는다.영친대오는여자집어른과아이모두에게머리숙여인사하며고마움을표한다.

성대한혼례식후푸미족의신부는신랑집에서살지않는‘불락부가’(不落夫家)의생활을한다.난평지역에서신부의불락부가시간은수년간에달하고녕랑지역은수년에서10년,20년에달하는경우도있다.푸미족은신부가임신을해야만진정으로남자집에서생활할수있다.때문에푸미족여성들은약혼과결혼을일찍해도보통25세이후,소수는30~40세후에신랑집에서생활하는경우가허다하다.이기간남자측은신부를네번맞으며혼례식을네차례거행하기도한다.낡은풍습에따르면처녀는결혼후갖은방법을다해친정에돌아가며결혼식을한두번만치르고신랑집에살게되면체면이깎이는일로간주했다.

녕랑 지역의 푸미족은 지금까지도 ‘약탈혼” 풍속이 있다. 푸미족의 “약탈혼”은 청년 남녀가 혼인이 저지를 당할 경우 “엎질러진 물”의 방식으로 결혼을 강행하는 것을 말한다. 남녀 당사자가 사전에 혼기를 정한 후 결혼식 날 처녀가 아무 일도 없는 듯 밭에 나가 노동에 참가하며 남자 측이 사람을 파견해 가만히 그 뒤를 따르게 하다가 갑자기 기회를 타 처녀를 붙잡고는 “모모가 차를 청합니다”라고 높이 외친다. 그 때 처녀는 반항하는 척 하고 준비하고 있던 친우들이 신속히 나타나 영친하는 사람들과 치열한 쟁탈을 하며 나중에 처녀를 성공적으로 남자 측에 “납치”해가 성대한 결혼식을 치른다. 비록 여자 집에서 이 혼사를 동의하지 않지만 이렇게 되면 묵인하는 수 밖에 없으며 풍성한 음식을 준비해 딸의 출가를 경축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후 푸미족의 낡은 혼인제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 청년남녀들은 자유로이 연애하고 혼사를 정하고 있으며 “불락부가”의 풍습도 사라졌다. 또 본 민족이 아닌 한족, 바이족, 티베트족, 나시족, 리수족 등 다른 민족과 통혼할 수 있게 되고 전통적인 혼인 풍속도 많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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