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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라족의 세시풍속과 금기

criPublished: 2020-08-26 16: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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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풍속:

중화인민공화국건국전이들의혼인은다음과같은특징을보였다.그하나는남자가중혼(重婚),다처(多妻)의특권이있었고아내를버릴수있는특권이있었다.남편이아내에게“나는당신을필요치않는다”고세번말하면이혼이이루어졌다.반대로여자는이혼을제기할수없었다.또조혼(早婚)현상이많아여자는아홉살,남자는12살이되면혼인이라는신성한사명을완성해야한다는보편적인규정이있었다.그외에도근친통혼현상이많았다.중화인민공화국건국후에는이런불평등하고시대에뒤떨어진풍속들이사라졌다.

쌀라족의 혼인은 혼담, 납폐, 혼례 세 단계로 진행된다. “하늘에 구름이 없으면 비가 내리지 않고 땅에는 중매인이 없으면 혼인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혼인풍속을 잘 보여준다. 과거 이들의 혼인은 중매인이 중신을 서고 부모들이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었다. 쌀라족들은 중신을 서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혼사를 한건 성사시키면 공덕을 그만큼 쌓는 것으로 여긴다.

남자 집에서 마음에 드는 처녀가 있으면 먼저 중매인을 보내 뜻을 전한다. 여자집 부모들은 이를 허락한 후 일가친척들을 모셔 뜻을 물으며 그 중에서 외삼촌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다. 모두가 동의하면 중매인이 여자 집에 약혼차와 큰 귀걸이 한 쌍을 전한다. 여기서 찻잎은 여자측 부모에게 귀걸이는 처녀에게 주는 선물이다. 이날 여자집에서는 친척과 중매인을 모셔 함께 식사를 하면서 약혼을 축하하고 결코 번복하는 일이 없을 것임을 분명히 밝히며 여자집에 보낼 예물을 상의한다. 논의가 끝나면 중매인은 나머지 음식을 신랑집에 들고 가서 일이 원만히 이루어졌음을 알린다.

장례풍속:

쌀라족은 위중한 병자가 있으면 친지와 친구들이 엽차 등 위문품을 들고 문병을 간다. 만약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미안한 일 예하면 뒷담화, 헛소문, 비방중상, 빚을 지는 등 일들이 있었을 경우에는 병자와 문병자간에 서로 대방의 용서를 빈다. 만약 종교적 책임 예하면 예배나 재계 등을 다하지 못한 경우 병자는 알라의 용서를 빌며 참회를 한다. 병자가 임종이 되면 병실에서 떠들어서는 안되며 친혈육외에 다른 사람은 방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때 이슬람교 교리에 밝은 사람이 주야로 병자의 침상을 지키면서 병자가 알라만을 생각하도록 주의를 환기시킨다. 어떤 집에서는 신직자인 아훙을 모셔 경을 읽으면서 병자가 생전에 범한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기를 알라에게 빈다. 병자가 알라의 이름을 되뇌이면서 사망하면 제일 귀한 죽음이라 여기며 이때문에 독실한 이슬람교신자들은 평소에 “코란경”을 부지런히 읽는다.

쌀라족은이슬람교를신봉하기에그장례는이슬람교의규정에따라속장(速葬)을하며일률로토장(土葬)을하고관을사용하지않는다.

사람이 운명하면 청진사에서는 젊은이들에게 묘지에 가서 묘혈을 파도록 한다. 이전에는 가족마다 묘지가 있었고 지금에 와서는 일부 마을의 가족들은 여전히 단독으로 묘지를 쓴다. 또 일부 마을에서는 하나의 공동묘지를 쓰는 경우가 있다. 성인일 경우 묘혈의 깊이는 약 2미터이고 길이는 망자의 키보다 좀 길게 하며 폭은 80센티미터 정도로 잡는다. 묘혈의 방향은 남북으로 하며 밑바닥 서쪽벽에 다시 굴을 파서 망자의 유체를 모신다. 쌀라족은 묘혈을 파주는 것은 일종의 선행이라고 여기며 다른 사람을 위해 묘혈을 많이 파줄수록 자신이 죽은 후 문죄를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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