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

두룽족의 역사

criPublished: 2019-07-02 10: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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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혁명후두룽강지역은창포통식변(菖蒲桶殖邊)공서(公署)의관할범위였으며1918년에창포통행정위원회공서로변경되었다.1933년에는공산설치국(貢山設置局)으로변경했으며공안국과구공소를설치했다.중화민국시기에정국이혼란에빠졌고두룽족인들은티베트토사와국민당정부의이중통치를받게되었다.국민당정부는이지역에대한통제를강화하기위해두룽강지역에서보갑(保甲)제도를실시했다.총4개보가있었는데하나의행정촌을한개보로하고하나의행정촌을1갑으로했으며현지의족장들을보장(保長),갑장(甲長)으로임명했다.이들은지역의일상사무를관리하는외에도국민당정부를위해세금을받아들이는책임을맡았다.

1907년 누강유역에서 발생한 “백하라교사건”은 현지의 티베트족과 리수족, 누족, 두룽족인들이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에 맞서 싸운 항쟁이었다. 1913년에 영국은 “측량대”의 명의로 무장인원 10여명을 파견했으며 이들은 미얀마에서 두룽강지역으로 들어왔다. 이들의 침력행위는 두룽족인들의 견결한 항쟁을 불러 일으켰고 두룽강지역을 통해 티베트지역을 침략하려던 영국군의 시도를 효과적으로 저지했다.

역사적으로 통치계급의 핍박과 학살을 겪고 근대의 제국주의의 수탈 등으로 두룽족인들은 고난의 세월을 견뎌내야 했으며 그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전에는 1700여명만 남았다.

1949년 8월 공산이 평화적으로 해방되었고 1950년 3월에는 공산임시정부위원회가 발족했으며 그해 4월 이 지역은 공산현으로 정식 개명되었다. 1950년 10월에는 공산현인민정부가 정식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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