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

두룽족의 역사

criPublished: 2019-07-02 10: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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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명칭:

두룽족은두룽(獨龍)이라자칭하고타칭으로는추이파(俅帕),취뤄(曲洛)등이있다.이들은주로공산(貢山)두룽족누족자치현의두룽강류역에살고있으며이지역의제일오래된거주민족이다.이들과관련된기재를보면“원일통지(元一統志)”에서“쵸우(撬)”로되어있는데이는“추이우(俅)”와같은발음으로현재의두룽족을지칭한것이다.1952년에두룽족인들의염원에따라정식으로두룽족으로확정되었다.두룽족은과경민족즉국경을건너온민족이며외국에는미얀마북부에두룽족의집거지가있다.

인구:

중국에살고있는두룽족의총인구는2010년의집계로보면6900여명에달하며그중에서운남성(雲南省)에거주하는사람이6300여명이다.운남성누강리수족자치주의공산두룽족자치현은유일한두룽족자치현이다.그중에서두룽강하곡에위치한두룽강향(獨龍江鄕)은두룽족의제일중요한집거지로이향의총인구중에서두룽족이98.87%를차지한다.그외일부가운남성디칭(迪慶)티베트자치주의일부향들에살고있다.

두룽족의 기원:

두룽족의민족기원및민족의형성에대해서는지금까지도뚜렷한맥락과선색이없으나언어로볼때고대저족(氐族)과챵족(羌族)에서기원했다고보는것이학자들의주된견해이다.두룽족의민족내부에서전해지는전설로보면그기원은두가지로나뉜다.하나는두룽족이토착민족이라는것이다.다른하나는최초에두룽족이누강일대에서살다가후에사냥을하면서우연하게두룽강하곡의광활한사냥지역을발견하고육속이곳으로옮겨와살면서남쪽으로지역을확장해갔다는것이다.

두룽족의 약 15개 씨족 중에서 8개 씨족의 전설은 이 민족이 누강지역에서 왔다고 전해진다. 또 언어 및 과거 얼굴에 문신을 하던 등 문화특징으로 볼 때 두룽족은 공산의 누족과 비슷한 점들이 많다. 때문에 최근에 대다수 학자들은 누족과의 연관설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다.

두룽족의 연혁:

두룽강하곡지대는당나라,송나라때에남조(南詔)와대리국(大理國)의관할범위에있었고원,명,청세개조대때는려강(麗江)목씨(沐氏)토사와려강로군민총관부의통치를받았다.이기간에한문사서중에는두룽족선민들에대한기재가남아있다.원나라의사서기록에보면현재의려강시,누강리수족자치주와디칭티베트족자치주남부등지역의서북부가오늘의티베트자치구와인접해있었다.이때는두룽족과티베트족,리수족의선민들이일부지역에서함께살았음을유추해볼수있는대목이다.이런기록들로보면후에원나라때두룽족의선민들이점차두룽강유역에로옮겨갔음을알수있다.청나라때의역사기록에보면“추이우인들은난창강(澜滄江)의대설산밖에살고초막을짓고산다.남자들은머리를길게기르고짧은옷차림을한다.여자들은구리귀걸이를달고옷역시삼베로해입었다.더욱특이한것은일부사람들이동굴속에살고나무잎으로몸을가리고짐승의고기와피를먹는원시적인생활을하는것이다.”이는당시두룽족의낙후된생산및생활방식을보여는대목이다.

청나라중반에이르러두룽강과누강은두구역으로나뉘어려강목씨토사지부소속의강보토천총(康普土千總)과엽지토천총(葉枝土千總)의관할에속했다.청나라때의기록으로보면1730년부터두룽족은황랍30근,삼베15장,야생나귀가죽20장을관할장관인강보토천총에게공물로바쳤다.그후강보토천총은두룽강상류지역을티베트라마사(喇嘛寺)에기증했고라마사는두룽족인들로부터“제도비용”과“보시비용”을받았다.이때에도강보토천총은여전히공물을받았다.공물이부족할경우에는두룽족인들을노비로삼았다.그외동쪽접경지역의리수족노예주들도두룽족인들을붙잡아노예로삼았다.이런압박은두룽족들의몇대에걸친반항을야기했으나이런반항은무자비한진압을당했다.포악한노예주들은선후로두룽족의몇개가족을몰살하기도했다.또두룽족인들을핍박해불평등맹약을맺고“영원히번복하지않는다”는맹세를하도록했으며공물을바치거나노비를바친다는서약을하도록했다.1907년부터1908년까지청나라정부는관원을파견해누강과두룽강일대를순시했으며현지인들에서“화두(伙頭)”,“갑두(甲頭)”등직무를위임하고현지인들의공납을폐지하도록명했으며토사들이국경민들을노비로삼는것도엄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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