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족(侗族)의역사
민국시기에 국민당은 보갑제도를 실시해 노동인민들을 잔혹하게 통치했으며 거기에 천재까지 겹쳐 뚱족인민들은 생활고에 빠진다. 1949년 11월 뚱족인민들은 인민해방군을 도와 국민당 정부의 반동통치를 뒤엎고 본 민족의 해방을 맞이했다.이로써 장기적으로 고난에 허덕이던 뚱족인민들이 새로운 삶을 얻는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 소수민족과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중앙인민정부는 민족방문단을 파견해 1950년과 1951년에 선후로 뚱족지역을 방문해 당중앙과 모택동 주석의 친절한 위문을 전하고 당의 민족정책을 홍보함으로써 민족단결을 증강했다. 1951년부터 1952년까지 뚱족지역은 토지개혁을 완성했으며 1953년부터 1957년까지 농업합작사와 사회주의 개조를 완성해 생산력을 해방하고 생산력의 발전을 추진했다.
뚱족은민족고유의언어가있다.뚱어는한어티베트어계장족뚱족어계뚱족수이족언어갈래에속하며북,남두방언으로나뉜다.귀주의용강(榕江)말을표준음으로하는뚱어는성조가많고어휘가풍부해‘음악성이풍부한언어로’로불린다.
뚱족은 전에 고유의 문자가 없었다. 1958년 자원의 원칙에 따라 중국은 라틴자모의 형식으로 뚱족을 도와 뚱족의 문자를 창제해 뚱족인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 뚱문의 산생은 뚱족 문화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음을 상징한다. 뚱문의 보급은 뚱족문화의 발전을 추진하는데서 적극적인 역할을 놀았다. 비록 뚱문은 창제로부터 보급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사실이 증명하다싶이 뚱족의 문자에 대한 보존과 계승, 고양은 뚱족의 전통문화를 살리고 한문을 배우며 선진민족의 과학적인 문화를 습득하는데서 지름길의 역할을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