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

뚱족(侗族)의역사

criPublished: 2019-05-22 13:11:16
Share
Share this with Close
Messenger Pinterest LinkedIn

뚱족은 중국 남방의 귀주성과 호남성, 광서장족자치구에 주로 거주하고 있는 역사가 유구한 소수민족이다. 2010년 제6차 전국인구보편조사에서 뚱족의 인구는 약 288만명으로 집계돼 소수민족 중 인구규모가 11번째인 것으로 알려졌다.

뚱족의선민은선진(先秦)시기이전의문헌에서‘검수’(黔首)로호칭된다.통상적으로뚱족은고대백월(百越)의한갈래에서발전되어온민족으로알려져있다.뚱족은주로논벼재배를위주로하는농업에종사하며임업도겸해농업과임업생산에서모두상당한수준을자랑한다.특히논벼재배의역사가유구하다.

뚱족은깜(gaeml)이라자칭한다.방음의변화에따라일부곳들에서는잠(jaeml)또는중(jongl)이라부르기도하나그뜻은똑같아“산속과삼림속에서외계와단절된생활을하는사람’을가리킨다.또뚱족끼리는서로잠,점,로스,조스등으로호칭하나사용하는언어는대체로비슷하며세시풍속에서도차이가없다.그외뚱족과잡거하는수이족들은뚱족을깜으로호칭하고묘족은뚱족을닥스(dax),굴(gul),현지한족들은뚱족을‘뚱쟈’또는‘뚱족”이라고부른다.명나라와청나라이후뚱족은‘료인’(僚人),‘동료’(侗僚)’,‘동만’(洞蠻),‘동묘’(峒苗)로불렸으며‘묘’(苗)또는‘이인’(夷人)으로폄하해불리기도했다.그후중화민국시기에는‘뚱쟈’로,중화인민공화국건국후부터는‘뚱족’으로불렸다.

뚱족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많지만 뚱족이 고대 백월의 한 갈래에서 발전하여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뚱족이지금거주하고있는지역은중국고대춘추전국시기초나라상어(商於)에속했고진나라때에는검중군(黔中郡)과계림군(桂林郡),한나라때에는무릉군(武陵郡)과울림군(郁林郡)에속했다.위진남북조로부터수나라에이르기까지이곳은또‘오계지지’(五溪之地)로불렸으며당나라와송나라때에는‘계동’(溪峒)으로불렸다.예로부터지금에이르기까지이곳은소수민족들의활동지역으로서춘주시기부터진한시대에는월인’(越人),‘검중만’(黔中蠻),무릉만이이곳에서활약했다.위진남북조로부터당,송시기에는이곳의소수민족들을‘오계만’또는‘만료’(蠻僚)라고폄하해불렀다.고대의월인은방대한군체로여러갈래로분류된다.만료로불린갈래는남북조시기에‘료’로호칭되었으며당송시기에‘료’인은한층분화되어뚱족을포함한많은소수민족으로분리되어나왔다.명나라에이르러뚱족은비록료인에서분리되어나왔지만일부사람들은뚱족을여전히‘료’라고불렀다.

뚱족이단일민족으로형성되기시작한것은수당시기이다.당나라때뚱족의상층인물또는추장이나수령들이중앙왕조에귀순하기시작했으며당왕조는‘동구’(峒區)에주와군을설립해회유정권을내오고현지대성의수령을자사(刺史)로임명했다.당나라말부터5대에이르기까지봉건왕조가쇠락하면서변강지역의소수민족을통치할여력이없게되자뚱족의대성토호는‘동주’(峒主)로자처하며10개동(峒)을관할했다.동은뚱족사회내부의행정구역으로동의정치와경제,군사는동주가좌우했다.북송시기에뚱족의수령들은선후로봉건왕조에귀순했으며조정에지방특산품을공물로바치고조정은그들이토관직을세습하도록했다.송나라때강대한한족경제문화의영향을받아뚱족의정치와경제에도비교적큰변화가발생했다.왕조세력의영향으로‘동수’(峒首)들은성곽을쌓고학당을세우기시작했다.원나라때뚱족에대한통치는당송시기의‘회유’정책을이어갔으며명나라때에는뚱족지역에토관과류관(流官)이함께통치하는‘토류병존’의국면이나타났다.청나라초엽에중앙왕조는뚱족지역에서여전히명나라의‘토류병존’을세습했으나토사의실권이많이쇠약해져류관의관할을받아야했다.그후토관을류관에귀순시키는바람에뚱족은기본상류관의통치범위에들게된다.1840년아편전쟁이후외국자본주의세력의침입과더불어뚱족지역도차츰반식민지반봉건사회에들어서며청나라말기에는태평천국운동의영향으로뚱족농민대봉기도발발한다.약20년간지속된이기의는청왕조에치명타를안겼다.

12全文 2 下一页

Share this story on

Messenger Pinterest Linked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