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의 뒤를 이어 중일 우호를 추동하고 있는 세이온지 카즈테르
올해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70년간 수많은 외국 정치가와 학자, 상공계인사, 민간인들이 중국의 발전과 진보를 지켜봐왔고 본국과 중국간 우의를 추진하는데 기여해왔습니다.
세이온지 카즈테르 선생은 일본 명문의 후손입니다. 그의 부친 세이온지 킨카즈는 일찍 중국과 일본이 국교 정상화를 실현하기 전부터 양국 민간우호교류사업을 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은 분으로 주은래 총리로부터 '민간대사'로 불리웠습니다. 그러고보면 세이온지 카즈테르 선생은 세이온지 가족의 제2대 '민간대사'인 셈이며 '중국인민의 오랜 벗'입니다.
세이온지 카즈테르 선생은 기자에게 1956년에 일본과 소련이 수교한 후 일본 국내에서는 중국과 조속히 수교하기를 바라는 기대가 컸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주은래 총리는 예리한 정치적 안목으로 이 기회를 정확히 파악했고 중일 국교 정상화를 추동할 수 있기를 바라며 사회 각계에 친구가 많으며 사심이 없는 일본 유지인사를 중국에 초청해 준비작업을 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1958년 1월에 세이온지 킨카즈 선생은 일가족과 함께 홍콩을 거쳐 베이징에 왔습니다. 얼마 지나 주은래 총리 부부가 중남해 서화청에서 세이온지 일가족을 접견하고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세이온지 카즈테르 선생은 지금도 주은래 총리가 했던 당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주은래 총리는 중학교 3학년을 다니는 나에게 두 마디를 해주었습니다. 첫 마디는 앞으로 베이징에서 장기간 생활하게 될텐데 친구를 많이 사귀라며 이런 친구들은 후에 너 개인의 귀중한 재부가 될 뿐만 아니라 일중 양국의 귀중한 재부가 될 것이라는 말이였습니다. 두번째는 향후 베이징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사람과 일을 만나고 겪게 될텐데 중국은 발전 중 국가여서 좋은 면도 있고 좋지 않은 면도 있으니 결점이나 부족한 점, 잘못을 발견하게 되면 거리낌없이 직접 너의 친구와 교사, 교장에게 말하거나 그들이 안 들어주면 직접 나에게 말해도 좋다는 당부였습니다. 주은래 총리는 우리는 듣기 좋은 말만 들어서는 안 된다며 잘못을 솔직하게 충고해주는 친구를 더욱 필요로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어려서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후에 돌이켜보니 주은래 총리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세이온지 카즈테르 선생은 양국간 국교 정상화를 하기 전 중일관계는 일본 국내 시국의 변화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특히 1958년 '나가사키 국기사건'이 발생한 후 중일관계는 크게 뒷걸음질했으며 양자 무역관계도 한때 중단된 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배경에서 주총리는 중국의 대일본 정책에 대해 큰 조정을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앞서 줄곧 정부차원의 소통으로 중일 국교 정상화를 실현하기를 바랐지만 기시 노부스케 정권이 출범한 후로 단시간 내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없게 되자 민간교류의 힘을 빌어 민간의 노력으로 정부를 추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