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국민을 위하는 자오위루 정신
2021년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백 년의 세월 속에서 많은 우수한 공산당원들이 각 분야에서 나라와 백성들에게 복을 마련하고 고유의 정신적 부를 창출하며 공산당의 정신세계를 풍부히 했다.
그런우수한공산당원의대표중한명이바로생명이다하는날까지자연과싸우며국민들의생산과생활여건을개선한모범적인공직자자오위루(焦裕祿)이다.1922년산둥(山東)에서태어난자오위루는어려서온갖고생을다했고1946년에공산당에가입했으며1950년부터허난(河南)성에배치되어웨이스(尉氏)현다잉(大營)구구청장과공산주의청년단정저우(鄭州)지구위원회제2서기,뤄양(洛陽)광산기계공장공장장등직무를담임했고그과정에간질환을앓게되었다.
1962년,허난의동쪽에위치한란카오(蘭考)현이심각한홍수와황사,알칼리토양등3대자연재해에직면하였고바로그런때자오위루는란코우현당위원회서기로부임했다.자오위루는시시로찾아오는통증을견디며사람들을이끌고황사를막고알칼리토양을개량하며생산과생활의자구책을마련했다.강도높은업무로자오위루의병세는점점더위중해졌으나그는1964년42세를마감으로생을마감할때까지자신의모든것을바친란카오를떠나지않았다.자오위루정신의격려하에란카오현은3년의노력을통해란카오의자연개량청사진을현실화함으로써자오위루의꿈을실현했고1965년란카오현은드디어식량자급을실현해식량난의역사에종지부를찍었다.
1966년 가 한 마음으로 국민을 위한 자오위루의 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자오위루를 따라 배울 것을 호소하는 사설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자오위루의 고상한 인품과 숭고한 정신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자오위루는 모든 공직자들의 본보기로 자리매김했다. 평생 국민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자오위루 정신은 시진핑 주석의 말처럼 “어제와 오늘, 내일에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국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도록 사람들을 격려한다”.
국민을 가까이 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것은 자오위루 정신의 기본 취지이다. 현급 정부는 국민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정부로 국민들은 현 정부를 통해 가장 먼저 정부를 알고 현 당위원회 서기의 언행을 통해 공산당을 이해한다. 자오위루는 란카오현 당위원회 서기로 가면서 벼슬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을 도모하고 국민의 효자가 되는데 포지션을 맞추었다. 자오위루는 “우리는 국민의 부모가 아니라 국민의 아들, 그것도 국민의 말을 잘 듣는 효자이다. 우리는 국민을 대신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 스스로 결정하게 해야 한다. 국민이 주인이고 우리는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고용인이다”고 말했고 국민을 위하는 정신을 평생 실천했다.
란카오현 당위원회 서기로 부임하면서 개인의 이익과 권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어떻게 하면 황사를 막고, 어떻게 하면 란카오의 환경을 정비하며, 어떻게 하면 란카오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할 것인가만 생각한 자오위루는 임종을 앞두고 “나를 란코우의 모래땅에 묻어주시오. 살아서 막지 못한 황사를 죽어서라도 막겠소”라는 유일한 유언을 남겼다.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는 것은 자오위루 정신의 본색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자오위루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농민들의 상황을 가장 잘 알았고 후에 란카오현 당위원회 서기가 된 후에도 일말의 낭비도 허용하지 않고 한 점의 혜택도 누리지 않았다. 그는 사무실 집기 교체를 제안 받자 “낡은 의자에 앉으면 혁명을 할 수 없단 말입니까?”라고 일침을 놓았고, 부인이 새 양말을 사자 여러 곳을 꿰맨 양말이 “아직도 신을 만 하다”고 거절했다.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며 싸우는 간고분투의 정신은 낡은 집기를 사용하고 양말을 꿰매서 착용하는 등 교조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미색과 금전, 권력의 유혹을 멀리 하는 일종의 “계율”이고 부패함을 막기 위한 “스스로의 경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