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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40년, 그 때 그 시절

criPublished: 2018-09-18 16: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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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초기의산물로'자영업자'를들수있다.계획경제시대가가고일찍시장경제에눈을뜬사람들이이른바'철밥통'을버리고돈벌이를위해시장으로쏟아져나왔다.이들은가장먼저부를축적한사람들이됐다.사진은1986년광주(廣州)시내한복판에서커다란대야를지닌한자영업자가자전거로힘겹게움직이고있는모습이다.

40년 전 개혁개방 초기 수입 음료수 코카콜라를 처음 맛 본 중국인들은 "중약 맛 나는 음료수"라고 그 맛을 표현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금방 그 쌉싸롬하면서도 톡 쏘는 콜라의 맛에 매료되었다. 사진은 1979년 코카콜라가 처음 수입될 때의 자료사진이다.

코카콜라가 수입되고 나서 얼마 안돼 커피가 수입되면서 중국에서 커피는 전통차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사진은 커피가 다른 전통음류수와 함께 매장에 진열된 모습이다.

1978년개혁개방이후글로벌기업들은중국시장에앞다퉈진출했다.그중패스트푸드의등장은중국요식업계에새로운바람을불러일으켰다.패스트푸드대표브랜드 KFC 중국1호매장베이징전문(前問)매장의모습이다.

개혁개방 전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의 옷차림새는 대체로 검정, 남색, 회색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 후 사람들의 옷차림은 크게 달라졌다. 디자인과 색상이 다양해졌으며 유행을 따르기 시작했다.

개혁개방 이전에는 중국 남성들이 중산복을 주로 입었다면 20세기 초, 해외 유학파들이 속속 귀국하면서 또 중국의 지도층 인사들이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대도시를 중심으로 정장 붐이 일기 시작했다.

1979년 이전, 사람들의 주된 교통수단은 자전거였다. 버스를 제외하고는 거리에서 차량을 보는 것이 좀처럼 힘들었던 그 시절, 자가용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부의 상징이었다. 사진은 중국에 처음으로 수입된 자가용 차량 소피트 126p 모델이다.

1979년중국의장홍(長虹)회사는일본파나소닉으로부터흑백TV 생산라인을들여왔다. TV를사기위해전국각지에서모여온화물차들이공장밖에서줄서대기했을정도였고공장이24시간쉬지않고풀가동됐음에도물량은창고에머무를틈도없이생산되는족족시장에팔려나갔다고한다.

1984년광주시(廣州市)가처음으로할리우드영화"슈퍼맨"을수입하여상영했다.

지금은너도나도한대쯤은갖고있는흔한스마트폰이지만1987년당시에만해도언제어디서나통화가능한기능을탑재한휴대폰은그야말로획기적인산물이었다.그당시따거따(大哥大)라고불렸던휴대폰은신분의상징,부의상징이었으며더우기는과학기술발전의표징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사람들의 여가생활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연인과 영화를 보며 데이트를 즐겼고 청바지를 입고 디스코를 췄다. 사진은 1981년 나팔바지를 입고 라디오 단말기를 든 한 청년이 디스코를 추고 있는 모습이다.

여성들이 아름다움에 점차 눈을 뜨기 시작했다. 화장을 하고 파마를 하는 등 개혁개방 이후 중국 여성들이 치장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사진은 1982년 상해에서 가장 큰 이발소인 남경이발소에서 여성들이 너도나도 파마하고 있는 모습이다.

광주시는 그 지리적 위치 때문에 개혁개방 이후 새로운 유행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이기도 하다. 사진은 1985년 "두 가지 문명건설"과 "5강4미3열정"이라는 주제로 광주시가 미인선발대회를 개최했다.

파란 눈, 노란 머리, 80년대 중국인들의 눈에 비춰진 외국인의 모습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소수의 외교관을 제외하고는 평소 외국인을 보지 못한 중국인들은 관광의 문이 열리면서 중국을 찾은 외국인들을 보면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진은 1980년 여름, 고궁에서 국보 구경은 뒤로 한 채 낯선 외국인에게 시선을 뺏겨 버린 중국인들의 모습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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