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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부호 편-4, 영원한 동반자

criPublished: 2022-10-21 09: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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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영원한 동반자

푸른 소나무 소슬한데 백마가 슬피 울었다. 상 나라 왕궁에는 수심이 가득 어렸다. 온 몸에 핏자국이 낭자한 부호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혈색을 잃은 꽃 같은 얼굴과 핏기 하나 없는 하얀 입술, 다시는 뜨지 않을 듯 굳게 감긴 눈을 지켜보는 무정 왕이 눈물을 줄줄 흘려 부호의 얼굴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하지만 부호는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했고 무정 왕은 마음 속으로 아내를 부르고 또 불렀다.

“왕후여, 가지 마시오! 나도 그대를 필요로 하고 상 나라도 그대 없인 안 됩니다!”

하지만 무정 왕이 아무리 불러도, 무당이 아무리 굿을 해도 부호는 자신이 지키고 자신이 넓혀온 상 나라를 더는 보지 못하고 영원히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평소 부호를 보살피고 지켜온 16명의 호위 병사 전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부호가 가장 아끼던 백마도 슬프게 울며 더는 풀을 먹지 않고 그녀가 가장 귀여워하던 사냥개 두 마리도 애처롭게 울기만 하고 먹이를 거부하더니 모두 부호를 따라갔다.

무정왕은부호를왕릉에묻지않고왕궁의가든을부호의영원한안식처로정했으며부호에게신(辛)이라는묘호(廟號)를하사했다.그에후세사람들은부호를모신(母辛)이라부르게되었다.부호는자신이생전에사용했던모든생필품과보물,무기와함께묻혔고스스로목숨을끊은16명의호위병사와백마,사냥개도부호의지하궁전옆에묻혀영원히부호를지키게되었다.무정왕은가든에거대한규모의능묘를조성하고시시로제사를지내고때대로와서그녀를기렸다.

부호묘에서백여점의옥기가발견되었는데모두가귀중한화전(和田)옥이다.부호묘발굴에의하면부호는서구인으로부터화전을지키다가목숨을잃었다.부호의장례식을치른무정왕의가슴속에는복수의불길이타올랐다.부호가귀방족(鬼方族)과의전투에서부상을입고삶을마감한것을생각하면서무정왕은복수의칼을갈았다.

귀방인은푸른눈에붉은수염을가지고있어서귀방이라불렸다.과거에는해마다보석과옥을공물로진상하다가그해에갑자기공물을중단하고상나라사람들의진입을금지시켰다.후에서구의야만인들이귀방족을패배시키고화전옥이나는곤륜산(崑崙山)남쪽산자락을강점했다.

무정 왕이 몸소 출정에 나섰고 부호가 군사를 이끌고 앞장서서 싸웠다. 하지만 10킬로그럼에 근접하는 부호의 도끼도 야만인의 완력을 당하지 못해 부호는 어깨에 부상을 입었다. 무정은 하는 수 없이 아내를 호위해 철수했던 것이다.

아내의 장례를 치른 무정 왕은 더 없는 슬픔과 함께 타오르는 분노도 느꼈다.

“왕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복수하지 않는다면 어이 왕이라 할 수 있고 어이 세상 사람들의 얼굴을 본단 말인가?”

무정 왕은 복수의 일념으로 야만인과 결전에 나설 군사를 훈련시켰다. 그리고 출정에 앞서 무정 왕은 부호묘를 찾아 상 나라 군대의 승리와 복수의 성공을 기원했다.

부호의영령이멀리가지않았고무정왕의명성또한높았다.3개월의어려운싸움끝에무정왕은끝내야만인을귀방족의땅에서몰아내고상나라의세력범위를곤륜산자락에까지확대시켰다.그로부터화전의옥은온세상에퍼졌고옥문관(玉門關)도오늘날까지이어져온다.

3200여년 전에 부호는 선후로 20여개의 지역을 정복해 상 나라의 부흥에 기여했으며 오늘날 중국이 넓은 국토를 보유하게 된 것도 부호가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다. 여성도 남성 못지 않음을 보여주는 역사가 부호에게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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