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

조선족의 역사

criPublished: 2022-09-13 15: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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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점점 더 많은 조선족이 동북3성이라는 이 전통적인 거주지를 떠나 베이징-천진, 황하하류, 장강하류, 주강하류 등 연해의 경제개방 지역으로 이주했다.

조선족은조선반도에서이주해동북지역에정착해살면서점차형성된과경민족의하나이다.1982년전국인구조사에서조선족의선민들이명나라말,청나라초부터중국의화북(華北)과동북(東北)경내에이주해와서살고있었음이발견되었다.

19세기중엽부터조선반도에서더많은조선인들이대륙으로건너왔으며이는중국조선족을형성한주요한군체이다.당시조선의봉건통치계급의착취와수탈이극심해지고설상가상으로1869년을전후로조선북부에서수년간자연재해가지속돼살길이막막해진농민들이정든고향을떠나압록강과두만강을건너중국경내에들어오게됐다.이들은압록강,두만강일대에서농사를짓고한족,만족등현지인들과함께살아왔다.1870년압록강북쪽지대에는이미조선족집거향이28개에달했다는집계가있다.1881년(청나라광서7년)에이르러연변지역의조선인은1만여명에달했다.1883년에는집안(集安),임강(臨江),신빈(新濱)등현에거주하는조선인주민이3만7천여명에달했다.같은시기에우수리강연안일대에도조선농민들이이주해왔으나그인구수가많지않았고봄부터가을까지농사를짓고는다시돌아가는형태여서거주가안정되지않은상태였다.

1953년 전국 제1차 인구조사 때 조선족인구는 111만여명에 달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창건된후전국적으로민족구역자치정책을실시했고소수민족이집거해살고있는지역에는민족자치지방정부를설립했다.이는소수민족인들이이땅과나라의주인이되고자주적으로민족내부사무를관리하기위한여건을마련했다.중국에서조선족의최대집거지역인길림성연변지역은1952년9월3일에연변조선족자치주를설립했다.그후1958년9월15일에는길림성장백(長白)조선족자치현이설립되었다.

개혁개방 이후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경제와 사회분야의 발전이 신속했고 종합경제실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2001년에 국무원은 연변을 동북에서 유일하게 서부개발정책을 향유하는 지역으로 지정했다. 정부의 동북노후공업기지 진흥전략이 실시됨에 따라 연변도 이 정책을 향수하게 되었다. 연변은 민족구역자치, 서부대개발, 동북노후공업기지진흥 등 국가의 3대 우대정책을 동시에 향수하는 유일한 지역으로서 그 정책적 우위가 뚜렷하다.

기반시설건설로보면연변지역은이미도로,철도,항공망이연결되고육지와해상을이어주는입체교통망이형성됐다.철도로는베이징,할빈(哈爾濱)등도시들과조선,러시아와연결되어있고바다로는조선라진과청진,러시아의포시에트,자루비노항을통해한국속초와일본아키다항에이를수있다.항공은중국의대도시들에이르는여러갈래국내선이있고한국서울,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등도시에이르는국제항선이있다.

연변의대외개방도괄목할만한성과를거두었다.동북아의“황금삼각지대”에위치한연변은독특한지리적우세와인적자원우세를보유하고있다.연변조선족들은조선과한국,러시아,일본,미국,캐나다,호주등나라와지역의조선인,한국인들과긴밀한관계를유지하고있있다.현재연변은훈춘(珲春)을주축으로하고연길(延吉)을기반으로한전방위적인개방구도를형성했다.

사회발전으로 볼 때 연변은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는 완정한 교육체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의무교육의 보급정도와 고등교육을 받은 인구비례가 전국 소수민족지역 중 앞선 위치에 있다. 또 방송과 신문출판, 의료보건 등 분야에서도 큰 발전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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