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르족의 역사
제3단계는1914년제1차세계대전이발발해서부터20세기30년대까지이다.이시기신강에이주한타타르인이가장많으며이주원인또한다양하다.제1차세계대전발발후제국주의전쟁의총알받이가되지않기위해신강에이주한타타르족청년들이적지않다.그리고10월혁명이후타타르족의적지않은소상공인과수공업자,농민,지식인들이옛소련의강제집단화를피해신강으로이주해왔다.이시기신강으로이주한타타르족중일부는자본가,지주,부농등10월혁명의타도대상이다.최초로신강에이주한타타르인일부는아러타이이르티시강유역의카자흐족카라카스부락에자리잡았다.그후손들은카라카스부락의속박에서벗어나기위해준가얼분지동남끝에이주했고그후20세기초반에지무싸얼(吉木薩爾)과치타이(奇臺)현접경지대의바이양(白楊)강양안에이주했다.그후또일부경외와우루무치등지의타타르인이이곳에정착했다.타타르인구와가축이늘면서청정부는서쪽으로샤오둥거우(小東溝),동쪽으로쓰취안거우(四泉溝)일대의목장을타타르인에게떼주어그들이유목생활을할수있도록했다.하여오늘의창지회족자치주경내에상대적으로집중된타타르거주구역이형성되게됐다.
1944년부터1949년까지삼구(三區)혁명시기,적지않은타타르족이삼구혁명사업에적극참여해큰기여를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후 타타르족은 기타 각 민족 인민들과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타타르족은 지금 전국 각 민족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민주권리를 평등하게 향유하고 있으며 국가 대사와 현지 사무의 관리에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타타르족은 신강의 평화 해방 전에는 주로 상업에 종사했다. 그것은 19세기 20~30년대 신강으로 이주해온 타타르인들이 주로 소상공인들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국민당 통치시기에는 악성 인플레이션과 물가폭등으로 타타르족 상점이 두 개 밖에 남지 않았으며 개혁개방 후에 상업전통을 다시 회복했다. 2000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타타르족 인구 중 상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약 17%에 달했다. 타타르족에게 있어서 목축업은 상업버금으로 가는 중요한 경제 분야이며 그 외 이들은 농업에도 종사한다.
타타르족은 교육을 중시하는 민족으로 신강의 교육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했다. 많은 타타르 지식분자들이 신강 각지에서 학교 건설에 참여했으며 타타르족 학교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위구르족 학교에서도 교편을 잡고 농촌이나 목축구에 가 인재양성에 힘을 쏟기도 했다. 신강에 세워진 초기의 현대화 학교들은 타타르인의 참여를 떠날 수 없었다.타타르족 인구의 문맹률은 아주 낮아 약 2.13%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