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버족의 역사
시버족은중국에서역사가오랜소수민족이다.시버족은원래중국의동북지역에살았으나건륭제재위기간청정부가일부시버족을신강에징발하기도했다.하여지금70%에가까운시버족은요녕성과신강차부차얼시버자치현,훠청현,궁류현에살고있고그외는동북의심양과동항(東港),개원(開原),의현(義顯),내몽골동부,흑룡강성의눈강(㜛江)유역에산재해있다.시버족의총인구는약19만명이다.시버족의인구수는1980년대이후급증세를보였는데그주요원인은과거만족과한족으로등록했던시버족들이잇달아본민족인시버족으로변경했기때문이다.
시버족은 본 민족의 언어와 문자가 있다. 시버족의 언어는 알타이어계 만주-통구스 어족의 만족어 갈래에 속하며 만족어를 토대로 발전, 형성된 관계로 만족어와 비슷하다. 시버 문자는 1947년 만주 문자를 약간 변형시켜 창제되었다. 신강의 시버족은 지금도 본 민족의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면서도 한어와 위구르어, 카자흐어를 겸용한다. 하지만 동북의 시버족은 언어와 의식주 면에서 거의 한족에 동화되었다.
시버족명칭의최초출현은명나라만력21년인1593년으로거슬러올라갈수있다.시버족의이름은시버족들이장기간활동한지역명에서비롯되었다는설이위주이다.한문사서의기재를보면시버족은쉬부,스비등수십가지이름으로불려오다명나라말,청나라초기에시버(锡伯)로통일됐다.
시버족의기원설을본다면선비(鮮卑)와여진(女眞)의후예라는설이주를이룬다.여진설을주장하는학자들은시버족이여진과르쟈(瓜尔佳)씨수완(蘇完)부의후예라고주장한다.또일부학자들은시버족이고우처(高車)써구얼(色古尔)씨에서기원했으며바이칼호수남부의홉스골호에서발원해기원429년북위태무제가고우처에원정한뒤눈강유역에이주해왔다고주장한다.
사서의기재에따르면고대시버국은금나라의책봉을받아도성을일명수완성(蘇完)성이라불리는시두(錫都)에두었다.시두의위치는지금의길림성장춘시쌍양구(雙陽區)다.고대시버국은원나라말기에몰락하기시작하다명나라때재흥기한뒤명나라말다시쇠퇴의길로나아가는데금나라천보(天輔)6년인1122년부터명나라만력(萬曆)16년인1588년까지쌍양시버국은총466년간존속했다.
12세기하반기몽골인들이동북을통일하는과정에시버인들은여진인들과함께몽골군에저항했다.당시적지않은시버인들이인적이드문산속으로도망가사서에기재된‘숲속의백성’의일부가됐다.전쟁과정에타오얼강과줘얼강유역의시버인부족의농업생산이크게파괴되어많은농경지가초원목지로전락했다.그러다원나라때태주(泰州)등지의시버인들이타오얼강과줘얼강유역에돌아오면서농업생산이회복되고요양(遼陽)성관할에들었다.
명나라말기몽골의코르친부(科尔沁)가두강유역을통제하면서시버인은또다시코르친몽골인들의통치를받게된다.명나라만력21년인1593년,몽골코르친부는시버등8개부와손잡고누르하치에대항하지만실패한다.그후누르하치는자발적으로귀순한자들에게‘불만주’(佛滿洲)라는호칭을하사하고만주인들과동일시한다.이때적지않은시버귀족들이누르하치에게귀순하는데역사에서이를‘시버만주’라고부른다.이중일부시버귀족들이청나라로부터관직을하사받아“시버세관좌령’(錫伯世管佐領)이되고시버인들은코르친몽골10기(旗)에편입된다.청나라강희31년에코르친몽골은시버,다우르등을청정부에진상한다.이때부터시버인들은‘이처만주’(伊彻滿洲)로불리며65개우록(牛彔)으로편성되어치치할,우라길림등지에파견된다.이는청나라때시버족의첫남쪽이주다.청나라건률제때청정부는신강이리지역의방어를강화하기위해시버장병1020명을징발해이리에보낸다.이들은이리에서시버영(錫伯營)에편입돼145년간변강을건설하고외래의침략을물리치는데서큰기여를한다.
1931년 ‘9.18’ 사변 후 동북지역에 거주한 시버족은 한족, 만족과 함께 항일투쟁에 나선다. 이 때 많은 시버족 청년들이 중국공산당에 가입하며 1949년 신강의 시버족과 동북의 시버족이 함께 해방을 맞이한다.
1953년훠청(霍城)현에이처가산(伊車嘎善)시버족향,1954년에는차브차르(察布査爾)시버족자치현,그후에는또요녕성심양시에흥융대(興隆臺)시버족진과황가(黃家)시버족진이설립된다.
새 중국 창건 후 안락한 삶을 누리게 된 시버족은 인구도 점차 늘어 1949년부터 1978년까지 짧은 30년간 인구가 한 배 이상 증가했다. 또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시버족 농민들의 소득도 증대해 지금은 날로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