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

징족의 역사

criPublished: 2020-11-06 21:53:58
Share
Share this with Close
Messenger Pinterest LinkedIn

1944년초에 일본제국주의가 징족지역을 침범하자 징족인들은 공산당이 강평지역에서 조직한 항일유격대에 적극 참가했으며 항일전쟁이 승리할 때까지 무장투쟁을 견지했다.

1945년10월중국공산당광동남로특위(廣東南路特委)의파견대가10만대산근거지를창설하고유격전을진행했다.징족인들은유격대에젊은청년들을참가시켰고군자금과군량미를보내주었으며지주와부자들의재물을몰수해유격대를지원했다.이들은또유격대를추포하는국민당군에용감히맞서싸움으로써혁명역량을보호했다.

1949년 이 지역의 유격대는 중국인민해방군과 함께 8개월의 짧은 시간내에 평강 등 거점들을 장악했으며 방성현 인민정부를 세웠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전에 징족지역은 계급분화가 심했다. 징족은 주로 어업에 종사하면서 농업과 염업도 함께 했다. 부농과 어업자본가들은 대량의 자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지주들은 어업도구, 농경지, 어로구역 등을 세주어 폭리를 취득했다. 농민과 어민들은 실물로 소작료를 바치는 외에도 지주집의 여러가지 노역을 담당해야 했다. 예하면 소작농 한명당 지주집을 위해 약 40일간 땔감을 해와야 했고 평소에는 지주집의 건물보수, 돼지우리만들기 등에 동원되었으며 경조사가 있을 때는 잡부로 일해야 했다.

과거징족내부에는“옹촌(翁村)”이라는조직이있었다.옹촌은촌장이라는뜻도포함하는데연장자가이직을맡아마을의규약집행을감독하고마을의사무를처리하며제사를주재하는일을했다.“옹촌”의향약제1조에는촌민들은세금과소작료를바치고병역에나가야하며이를어기는자는처벌을받는다고규정되었다.향약은반동정부가인민들을통치하고착취하는도구였다.

중화인민공화국창건후1952년에징족3도에만미,산심,무두세개민족향을설립했다.1958년5월1일징족민족향과부근의10만산장족요족차지구를기반으로동흥각민족자치현(東興各族自治縣)을설립했다.1956년에는동흥각민족자치현이광동성에서광서장족자치구로소속되었다.1978년12월25일에는방성(防城)각민족자치현으로개명했으며1992년9월에동흥개발구가설립되었다.1993년5월에방성각민족자치현과방성항구를철폐하고지구급시인방성항시를내왔고징족3도는방성항시동흥경제개발구소속으로되었다.

1996년 4월에 현급시인 동흥시를 설립했고 이때부터 징족3도는 방성항시 동흥시 강평진 소속으로 편입되었다.

首页上一页12 2

Share this story on

Messenger Pinterest Linked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