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랑족의 역사
민국시기에도부랑족들의저항은계속되었다.1940년을전후해시쐉반나서정(西定)의부랑족들이국민당군대의잔혹한통치에항거해봉기의깃발을들었고라후족과하니족인들의지원을받으면서국민당정부가파견한진압군을물리쳤다.부랑족은또따이족토사와본민족집권자들의통치에지속적으로반항했다.1943년에서정만와채의부랑족들은두령의식량징수를반대한투쟁을벌였고결국은18명두령의반동통치를전부뒤집어엎었다.
19세기중엽이후,부랑족인민들은여러민족과함께영국,프랑스제국주의침략을반대해운남에서애국투쟁을전개했다.항일전쟁때부랑산과시쐉반나서정의부랑족들이다른여러민족과함께일본과시암(暹羅)군대에공동으로항거해조국변강을지키는공을세웠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전에 부랑족의 사회발전은 매우 불균형하였고 대체로 두 유형으로 나눌수 있었다. 그 하나는 임창지역과 사모지역에 거주하는 부랑족을 대표로 한다. 이들은 장기간 한족 등 기타 발전이 빠른 민족과 섞여 살면서 경제, 문화면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고 사회경제발전이 비교적 빠른 편이었으며 보갑제도가 실행되었다. 이런 지역들에는 지주경제가 이미 확립된 상태였다.
다른 한가지 유형은 시쐉반나의 부랑산, 서정, 파다 일대에 집거한 부랑족을 대표로 한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따이족 봉건영주의 통치를 받았으며 부랑족인들은 해마다 이들 영주에게 일정한 수량의 화폐 혹은 실물을 공물로 바쳐야 했다. 이런 통치는 부랑족사회가 가족단계에서 계급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깊은 영향을 주었다.
20세기 50년대 초 부랑산구의 인민정권이 설립된 후 상급정부는 현지 실정을 감안하여 직접 사회주의단계로 과도하는 정책을 실행했다.
1985년 12월 30일 운남성은 여러 소수민족이 집거한 지역에 연합으로 된 자치지방인 쌍강라후족와족부랑족따이족자치현을 설립했고 부랑족은 자치현의 자치민족으로 되었다. 그외에도 부랑족이 상대적으로 집중된 멍해현 파다, 멍만과 멍강, 임창지역의 운현, 경마와 보산지역의 시전 등지에 기타 민족과 연합으로 된 민족향을 세웠다. 이들은 본 민족과 본 지역의 사무를 자주적으로 관리할 뿐만 아니라 국가사무와 소재지역 각 급 지방사무의 관리에도 평등하게 참여한다. 이들은 또 본 민족의 대표를 선거해 전국인민대표대회, 운남성인민대표대회와 각급 인민대표대회에 참가한다. 이와 함께 당과 정부는 부랑족 간부 양성에 알심을 들여 민족구역자치제도에 든든한 보장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