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

보안족의 역사

criPublished: 2019-09-20 18: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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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족의 발전:

명나라조정은변강방위를위해각지에성곽을쌓고군대를파견해지키도록했다.홍무(洪武)연간에지금의청해동인지역에보안참(站)과보안보(堡)를설치했고만력(萬曆)연간에는이곳에“보안영(保安營)”을설치함과동시에보안성을확건하여하주위(河州衛)에소속시키고도지휘(都指揮)라는관직을두어동인12족(보안12족이라고도함)을통치하도록했다.이때까지도동인을포함한하주일대에정착해살고있던몽골족,색목인이여전히인구의다수를차지했다.후에명나라정부가여러곳들에서회족과한족의군사들을대량으로보내이곳에서둔전을실시해변강방위를책임지게했다.“보안영”이확대발전하면서보안지방의민족구성에도변화가생겼다.색목인후예를기반으로회족과몽골족,티베트족,한족,투족등민족들이장기간살아오면서공동언어를형성했고공동의심리소질을가지게되었다.대략명나라중엽이되어서는이들이자연스럽게융합되어새로운민족공동체인보안족을구성하게되었다.

청나라함풍(咸豊),동치연간에라마교융무사의봉건농노주의가혹한통치를견딜수없게된보안족이민족대이동을시작했다.이들은순화(循化)에서몇년간거주하다가감숙에들어갔으며맥석산부근의임하대하가,유집(劉集)일대에정착하기시작했다.이곳에서보안족은여전히동인지역에서살때의습관에따라가싸르의보안인들이대돈촌(大墩村)에거주하고하장의보안인들은감하탄촌(甘河灘村)에,보안성의보안인들은매파촌(梅坡村)에각각거주하면서오늘의“보안삼장”을형성했다.청나라말부터민국시기까지보안족거주지역은지방군벌들인마안량(馬安良)과마보방(馬步芳)의통치하에있었다.1930년국민당정부가보갑(保甲)제도를실시하면서이곳을“량보(兩保)”지역으로획정했다.

역사적으로볼때보안족들은부동한방식으로임하지역의회족과한족등여러민족의반봉건투쟁에참가했다.청나라동치초년에보안족은청해동인에서임하에로이주하는과정에현지회족들의청나라반대봉기에참가했다.1900년에8국연합군이베이징을침략하던때도성을지키던“감군(甘軍)”중에는보안족병사십여명이외세의침략에맞서용감히싸운기록이있다.국민당통치시기에도보안족들은봉건통치계급과국민당정권에맞서목숨을건투쟁을진행해왔다.

1980년 6월에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은 맥석산 보안족둥샹족쌀라족자치현을 세우도록 비준했고 다음해 9월 30일에 자치현이 정식 설립되었다. 민족자치지방의 설립과 함께 보안족 간부들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1981년 자치현이 설립될 때 전 현의 소수민족 간부는 434명, 그중 보안족이 70여명에 달해 16.2%를 차지했다. 2001년에 이르러 전현의 소수민족간부는 1631명에 달했고 그중에서 보안족이 311명을 차지, 자치현 설립때보다 4.4배 늘었고 19.1%를 차지하게 되었다. 현재 각급 인민대표대회중에는 보안족의 대표들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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