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

허저족의 세시풍속과 금기

criPublished: 2019-08-18 18: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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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풍속:

허저족은씨족외혼인제를실행했다.과거자녀들의혼인은부모들이결정했으나지금에와서는자주적으로혼인을하는방향으로변화했다.과거혼인방식으로는중매인소개방식,남녀쌍방부모가직접만나서결정하는방식,겹사돈을맺는방식,지복위혼(指腹爲婚)즉아기혼사를미리정하는방식등네가지였다.그외에는민며느리를삼는방식도간혹사용되었다.이들은결혼에서가정조건을크게따지지않으며빈부차이역시장애로되지않는다.남녀쌍방의부모가자녀들을위해배우자를선택하는기준은주로어렵과사냥에능하고사람됨됨이가정직하면서도어진남자가우선선택대상이다.여자를선택하는조건은인품이좋고바느질솜씨가좋으며총명하고현명한여자를선호하며용모는주요한조건이아니다.

채색배와 썰매로 영친을 하는 풍속:

허저족은 영친을 할때 봄과 여름, 가을에는 채색장식을 한 배를 이용하고 겨울에는 썰매를 이용한다. 이때면 배 혹은 썰매에 특별한 장식을 하며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신부는 오빠가 업어서 배에 오르며 신부를 호송하는 대오가 신랑집에 간다. 신랑집에 이르러 민족특색의 혼례식을 치르며 사람들은 경축연회에서 마음껏 먹고 마신다.

개가풍속:

부지런하고 질박한 허저족인들은 배우자를 고를 때 부지런하고 정직하며 현명하고 능력 있는지의 여부를 기본기준으로 삼으며 부동한 민족끼리도 통혼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혼인을 도맡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민풍이 소박하고 가정교양을 중시했기에 부부가 이혼하는 경우가 적었다. 여자의 본가나 친가 모두 자녀들의 이혼을 가족의 흠집으로 여겼다. 허저족은 과부의 개가에 대해 제한이 없었다. 젊은 과부는 시동생에게 개가를 하며 시부모들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거나 가족 외 남자들에게 개가를 갈수 있었다. 과부들이 개가를 하는 경우에는 남편의 혼백을 위해 상을 치른 후에야 허용되며 재혼인 경우에는 결혼식을 하지 않고 친척, 친우들을 청해 연회를 차리면 혼인이 성립되었다.

장례풍속:

허저족은 대부분 토장을 실행했고 과거에는 그 장례가 비교적 간단했다. 사람이 죽으면 봇나무껍질로 잘 감싸며 나무껍질로 만든 바줄 세개로 시신을 묶은 후 매장하는 방식이었다. 후에는 장방형으로 묘혈을 파고 네면에 나무를 댄후 바닥에는 원목을 깔고 풀과 이불을 깔아 놓은 후 시신을 묘혈에 안치한다. 망자가 생전에 제일 많이 사용하고 좋아했던 물건을 수장품으로 넣으며 이를 원목으로 잘 덮고 그 위에 풀을 깐 후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든다. 후에는 만족, 한족의 영향으로 목제관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허저족의 장례의식은 사망자의 사망원인에 따라 다르다. 사냥중에 산에서 숨졌을 경우 봇나무껍질 혹은 나무가지로 시신을 싸서 나무위에 놓았다가 2,3년후 매장한다. 집에서 사망했을 경우 삼일간 시신을 모셨다가 입관한 후 매장한다. 비명에 죽은 사람은 이튿날로 매장한다. 온역이나 괴질로 죽었을 경우에는 그 날로 화장을 한다. 어린이가 죽었을 경우에는 봇나무껍질로 잘 감싼후 나무가지사이에 걸쳐 놓는다. 이는 어린이의 영혼이 작기에 지하에 묻으면 영혼이 빠져 나올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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