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

리수족의 세시풍속과 금기

criPublished: 2019-07-10 17: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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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리수족의 결혼식

리수족의혼인과가정의기본형식은일부일처제이다.하지만나름의특징도있는데남녀청년들이결혼전에연애의자유가크다는것이다.인구가많은마을에서는습관적으로새로지은빈집또는움막집을보수해이들의교제에편의를제공한다.청년남녀들은저녁이면이런집들에가삼현금을켜고노래를부르며서로정을나눈다.그러다자정이되면화당주위에빙둘러누워쉬기도한다.때론이런교제행사가곡식을간수하는헛간에서진행되기도한다.여자애들은13,14세면‘치마입기예’를올리며이예가끝나면이런사교행사에참가할수있다.과거에리수족은유년기에부모끼리정혼하거나지어뱃속혼인약정의경우도있었다.또삼촌자식과우선적으로결혼하는것도아주성행했다.리수족은‘나무중삼나무가가장크고사람들중삼촌이가장권위다’라는속어가있을정도로‘딸이있으면우선삼촌의뜻부터알아보는’세시풍속이있었다.오늘날리수족의청년남녀들은혼인자유를누리며가정은자유연애에기반해이루어진다.리수족은또‘하천의모래로애인을묻는’독특하고도오래된구애의방식이있다.리수족의설인년절,쿠어시가다가올때면복공(福貢)일대의리수족청년들은누강변모래톱에와구현이나비파를켜며노래부르고춤을추며정을나눈다.그러다마음이맞는처녀가생기면총각들은모래톱에웅덩이를파고친구들과함께처녀를웅덩이에파묻는다.그뒤친구들은신속히자리를떠나며당사자는처녀를묻은모래를파헤쳐애모의정을표한다.평소에얌전한처녀들도이때면더없이용맹해지는데보통7.8명이함께마음에드는총각을감쪽같이기습해모래톱에파묻는경우도있다.아무리건장한총각이라고해도이런사랑의기습앞에서는무기력해진다.리수족은소가정제를실시하며부모의재산은막내아들이계승한다.풍속에따라장남과차남은결혼후에부모와분가하며부모로부터일정량의땅과생활자료를물려받는다.하지만막내아들은부모와분가할수없다.리수족은부자연명제(連名制)가아니다.씨족은성씨가있으나가족은성씨가없다.아이가태어난후숙부나외조부또는삼촌이이름을지어준다.

장례:

리수족은 사후에 토장을 지낸다. 하지만 비정상 사망자는 화장을 행한다. 리수족은 노인이 사망하면 온 마을이 2~3일간 노동을 중단하며 마을 주민과 친지들이 술이나 고기, 식량을 갖고 망자의 집에 와 애도를 표하고 망자의 머리를 빗겨주고 얼굴을 닦아주며 새 옷을 갈아 입힌다. 망자의 시신은 짧게는 1~2일간 길게는 7일간 집에 놔두며 이 기간에는 매일 세 차례 제를 지낸다. 매번 제를 지낼 때마다 밥, 고기, 냉수를 각각 세 그릇씩 차려놓는다. 망자를 매장하기 전 마을 사람들은 망자의 집에 모여 장례춤을 춘다. 매장은 보통 쥐와 토끼, 뱀, 원숭이, 닭, 돼지에 속하는 날을 골라 행한다. 묘지의 대소는 망자의 연령 대소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망자가 남자면 매장 시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칼이나 활, 담배주머니를 수장품으로 넣으며 여자면 마직향낭, 바느실, 취사도구를 넣는다.

손님 맞이 예의:

리수족은 “술이 없으면 예의가 아니다”라는 속어가 있다. 하여 집에 손님이 오면 옥수수로 빚은 도수가 낮은 수주를 꼭 대접한다. 보통 손님은 주인이 넘긴 술 그릇을 받아 한 모금 마신 후 손으로 입술이 대였던 곳을 닦은 뒤 주인에게 술 그릇을 넘기며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며 주인은 그 술을 받아 한 모금 마신 뒤 그릇 테두리를 닦고 다시 손님에게 넘긴다. 이처럼 술 그릇을 주고 받고 하며 기분 좋게 한 그릇을 다 마시면 새로 술을 부어 주객이 술 한 그릇을 들고 서로 상대의 목이나 어깨를 껴안고 얼굴과 얼굴을 붙이고 함께 마신다. 이때 손님이 술을 마시지 않으면 주인에 대한 불 공경으로 여겨진다. 주인은 또 닭을 잡아 손님을 대접하며 마당에 심은 가지, 파 등으로 요리를 볶기도 한다. 리수족은 과거에는 채소를 심는 습관이 없었으나 지금은 거의 집집마다 채소밭을 가꾸며 장이 서는 날에는 채소를 팔러 가기도 한다. 리수족은 또 불고기를 즐긴다.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주인은 보통 앳 돼지를 구워 대접한다.

금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전 리수족 지역에서는 많은 금기가 존재했다. 일례로 리수족 여성들은 임신 후 아귀가 있는 장작을 지펴서는 안되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토끼입술의 아기를 낳는 다고 여겼다. 그리고 임신부는 외씨도 먹지 않았으며 먹으면 아이의 몸에 알락달락한 무늬가 생긴다고 여겼다. 또 과거 리수족은 해산 일을 계산할 줄 몰라 논밭에서 아기가 태어난 경우도 허다했다. 그리고 아기의 태반이 가장 더러운 것이라고 여겨 아기가 태어나면 태반을 즉시 1킬로미터 밖에 가져다 묻었다. 하지만 사회가 진보하고 의료조건이 개선되면서 이런 금기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리수족은 또 화당 위의 삼각대를 딛거나 이동하는 것을 금하며 삼각대에 침이나 콧물을 튕겨서도 안된다. 리수족은 거미를 해치는 것을 엄금한다. 그리고 장례기간에 망자의 친지나 한 마을 사람들은 고추를 먹지 않는다. 고추를 먹으면 망자에 대한 불 공경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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