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

두룽족의 세시풍속과 금기

criPublished: 2019-07-02 11:02:30
Share
Share this with Close
Messenger Pinterest LinkedIn

음식풍속:

오랜 세월동안 두룽족은 두룽강 하곡양안의 산지대에서 대를 이어 살아왔다. 두룽강 양안은 원시림이 울창하게 뻗어 있고 수림에는 각종 짐승들이 서식해왔다. 수렵시대에 이런 환경은 두룽족의 생활에 풍부한 짐승고기를 제공해 주었고 숲이나 산비탈에는 각종 버섯과 야채, 야생과일들이 널려 있었다. 또 두룽강과 그 몇백갈래의 지류중에는 수십종의 물고기들이 노닐었으며 두룽강 양안에는 밀, 보리, 조, 벼, 감자, 콩을 심을수 있었고 오이와 호박, 파, 배추, 완두, 복숭아 등 여러가지 과일과 남새들을 재배해 왔다. 또 소와 양, 돼지, 닭 등 가축들이 자랄수 있는 양호한 환경도 구비되어 있었다. 이런 자연생태환경으로 하여 두룽족은 산지대 농작물을 주로 재배하고 채집과 어렵을 보충으로 하는 음식문화구조를 형성하였다.

두룽족은 음주도 좋아해 집집마다 술을 빚었으며 그 도수는 20 내지 30도 정도였다. 술이 빚어지면 친척, 친구들을 청해 함께 마신다. 두룽족은 또 취차를 마시는 풍속이 있다. 이들이 차를 마시는 방식에는 두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엽차를 통에 넣고 난로가에 두어 찻물을 우려 마시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타차”로 이는 티베트인들에게서 배운 방식이다. “타차”의 방식을 보면 직경이 10에서 15센티미터에 달하는 대나무통에 소금과 끓여낸 동물 혹은 식물기름을 넘고 여기에 끓인 찻물을 부으며 긴 막대로 여러번 찻물을 상하로 저어주며 이를 다시 부어서 마시는 방식이다. 이런 차는 엷은 갈색을 띠며 그 맛이 짧짤하면서도 향기로우며 두룽족인들이 즐겨 마시는 보양식 음료수라고 할수 있다.

두룽족의 집짓기:

두룽족이 거주하는 방은 면적이 작고 건축자재로는 파파야나무, 대나무, 풀 등이 있다. 이들은 “한 집에서 집을 지으면 온 마을이 돕는다”는 풍속이 있다. 두룽족 남자들은 파파야 나무를 찍어 기둥이나 목판을 만들고 대나무 껍질을 이용해 울바자를 엮으며 두룽족 여자들은 풀 한 웅큼씩 가져온다. 보통 새 집은 하루에 완성된다.

이들의 집 구조를 살펴보자. 집은 보통 두칸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 한 방은 화로가 있으며 이는 주인이 취사를 하고 잠을 자는 방이고 다른 한 방은 미혼 자식들의 침실 혹은 손님 접대용 객실이다. 두룽강의 4향에는 세칸이나 네칸까지 큰 집도 있다. 두룽족은 식량을 저장하는 창고를 집에서 20 내지 30미터 되는 곳에 지어 놓고 1년동안 수확한 식량을 넣어둔다. 실외에 양식창고를 따로 짓는 습관은 두룽족 내부에 도둑행위가 없었음을 방증해준다.

혼인풍속: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전에 두룽족은 일부다처제현상이 존재했으나 이는 생활형편이 넉넉한 집들에서 존재했고 대체로 일부일처제 혼인방식이었다. 두룽족은 가족외 혼인제를 엄격하게 지켰으며 가족 내부의 통혼을 허용하지 않았다.

두룽족의 청년남녀는 혼인전에 자유롭게 교제를 했으며 혼인외 자녀는 사회적인 차별시를 받지 않았고 지어는 결혼후 혼인외 자녀를 남편집에 함께 데리고 들어갈 수 있었다. 혼인을 확정할 때에는 부모들이 결정했고 어릴 때 약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혼인은 정혼과 영친의 과정을 경과해야 했고 남자측은 여자집에 일정한 수량의 납채를 보내야 했으며 이를 두룽어로는 “푸마왕”이라고 했다.

양가 부모들이 허락을 하면 남자측 부모들이 몇몇 친척들을 청해 현지에서 나는 술을 가지고 여자집에 정혼을 하러 간다. 이때 여자측 부모는 온 마을의 사람들을 청해 술을 대접하며 딸의 납채 수량을 정한다. 납채는 남자측의 경제상황에 따라 정하며 소 한마리, 솥 하나, 장신구 몇점인 경우가 많다.

결혼식은 매우 떠들썩하게 치른다. 신랑측 친척과 가족들이 모두 신부집에 가며 신부 집에서는 돼지를 잡고 음식을 차린다. 저녁이 되면 모두들 밤을 새워 술을 마시고 노래 하며 춤을 추어 경하의 뜻을 전한다. 이튿날 신랑측이 신부를 데려가며 신부가 신랑집에 도착하면 시어머니가 신부의 손을 잡고 방안을 돌면서 집안형편을 소개한다. 이어 신랑네 집에서 돼지를 잡고 음식을 차려 손님들을 대접하며 저녁에는 역시 술을 마시고 춤노래로 즐긴다.

두룽족은 이혼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만약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떠났을 경우 친정쪽에 여동생이 있으면 아내역할을 대신하거나 납채를 돌려 주어야 했다. 만약 남편이 먼저 이혼을 제기할 경우 아내쪽 친정에서는 납채의 일부분만 돌려 주거나 아예 돌려주지 않아도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전에 두룽족은 누족, 리수족과 통혼할 수 있었으나 티베트족과의 통혼은 금지했다. 지금에 와서 이런 풍속현상이 많이 변했고 티베트족과의 혼인도 할수 있다.

두룽족의 장례풍속:

이들은 토장을 해왔다. 관은 널판자 네개로 만들거나 원목의 속을 파내고 시체를 넣거나 대나무 껍질로 시체를 감싼후 매장했다. 특이한 점은 두룽족의 장례풍속에서 시신을 직접 대문으로 내보내서는 안되며 반드시 집의 뒷벽이나 마루를 뜯고 시신을 내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다른 사람이 횡사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상적인 사망일 경우에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묘자리를 잡는다. 두룽족은 세상을 떠난 친인을 멀리 묻는 것은 매정한 행위라고 여긴다.

두룽족의 곡혼제:

이를 곡혼이라고도 한다. 이는 두룽족의 농업제사풍속으로 추수 때에 진행하며 곡식의 혼을 집에 불러오고 다른 곳에 가지 않도록 모셔 놓음으로써 내년의 풍작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과거 두룽족은 한알의 곡식종자가 싹을 틔우고 잎새가 자라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은 곡식종자에 영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 영혼이 도망가거나 죽게 되면 곡식종자의 생명도 끝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여러가지 귀신들도 사람처럼 식량을 먹으며 벌레와 새, 야수 등으로 변해 식량을 훔쳐 먹는다고 여겼으며 이런 피해를 본 식량은 그 영혼이 죽거나 놀라 도망치기에 이를 막을수 있는 여러가지 방도를 생각해 냈다. 그 중 한가지는 밭머리 풀속에 술 한두통 놓고 여기에 칼을 꽂아 놓는데 이는 오는 귀신은 술을 마시고 곡식을 다지치 말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칼침을 맞을 것이라는 경고를 나타낸다. 강냉이가 익으면 가을을 하여 한 곳에 모아 놓고 대나무가치를 교차되게 땅에 꽂아 놓으며 족장이나 노인이 가족성원들을 인솔해 “올해 수확한 강냉이가 이것 뿐이니 귀신은 이곳에 오지 말고 우리의 식량을 먹지 말라”는 주문을 반복적으로 읊는다.

금기사항:

이들의 풍속중에서 특이한 금기들도 있다. 집안에서 사람이 임종하기 전에 곡식종자를 다른 집이나 다른 곳에 옮기며 이는 곡식종자가 이후 싹이 나지 않는 것을 경계해서라고 한다. 귀신 숲속의 나무를 베어서는 안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마을에서 사람이 병으로 죽거나 흉년이 온다고 여겼다. 주인이 사냥을 나갔을 경우 손님이 그 집을 방문해서는 안되며 다른 사람이 사냥한 죽은 동물을 주으면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누어 먹어야 화를 피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Share this story on

Messenger Pinterest Linked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