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족의 문화와 예술
언어와 문자:
바이족의민족공통어는백어(白語)이다.중국민족언어학계는바이족의언어가시노.티베트어계티베트.미얀마어족에속한다고보편적으로인정하지만일부학자들은백어와한어간관계가더욱긴밀하다고주장하기도한다.
20세기50년대백어방언에대해조사연구를거쳐백어를남부의대리,중부의검천(剑川),북부의노강(怒江)등3대방언으로분류했다.기타소수민족의언어에비해백어방언은큰차이가없어교류에별로지장이되지않았다.바이족은평소생활에서백어로의사소통을하며대리주경내의일부한족들도백어를사용한다.바이족지역에서영화나방송,신문은모두한어를사용하지만민간문예활동시에는백어를주로사용한다.또바이족집거지의중학교와초등학교들에서는백어와한어를겸용한다.현재백어는여전히바이족집거지에서주로사용하는언어로되고있으며앞으로한시기동안바이족의가장중요한교제공구이고민족특색으로남을것이분명하다.현재전국적으로백어사용자가약130만명에달한다.
바이족은노백문(老白文)과신백문(新白文)두가지문자가있다.노백문은한자를토대로발전한것이고신백문은새중국창건후창제된병음문자이다.바이족은일찍부터한자를빌어백어를기록해왔으며한자의편방(偏旁)과부수(部首)를조합해‘백문’을창제했다.이런문자는역사적으로‘북문’(僰文)이라고도하며건국후창제된병음백문과구별하기위해‘노백문’이라고부른다.문헌자료로볼때노백문은각종비문(碑文)과역사저서,문학작품에많이사용되어왔다.허나명나라이래조정이운남에서한문화를보급하면서그사용범위가크게줄었으며지금은당,송,원,명,청시기의소수백문비문과서면문헌에서만노백문을찾아볼수있다.신백문은라틴자모를부호의기반으로한병음문자이다.창제초기에는널리보급되지않았지만수차개정을거치면서나중에두가지문자를변체(變體)겸용하는새로운문자방안을형성해검천,대리등지역에서널리사용하고있다.
민간문학:
‘남조중흥국사화권’(南詔中興國史畵卷)의기재에의하면남조시기바이족은이미‘장씨국사’(張氏國史)등역사저서를지었다.대리국시기에도‘백사’(白史)등이저술되었지만이미실전되고명나라비문에서만그흔적들을찾아볼수있다.명나라때에는바이족학자양사운(楊士雲)이이해지역역사를고증하는‘군대기’(郡大記)를펴냈고청나라바이족사학가왕숭(王崧)은운남을저술한책자61종을취합해‘운남비징지’(雲南備徵志)를펴내운남민족사와지방사연구에중요한참고자료를제공했다.
시가:
바이족은자기민족만의창세서사시와신화전설이있다.민간에서유전된장편서사시‘창세기’는반고의천지개벽의이야기를서술하고있다.또한남조시기의유명한‘사자춤’은당나라때이미중원에전파되었고‘남송봉성악’(南宋奉聖樂)도당나라궁정에서당나라14부음악의하나에입선되었다.
민요:
바이족의민간에는대량의산노래와소곡조가전해져내려오고있고여러가지제재와형식의서사가요도있다.바이족의민요는가사내용과제재가풍부하며생동하고활발하다.가장사랑을받고널리유전된바이족민요로우선‘백족조’(白族調)를꼽을수있다.그중에서도특히대리,검천,이원(洱源)서산의‘백족조’가가장대표적이다.산이나들판에서부르는이런민요들에는생산노동가와사랑가가망라된다.그외바이족인민들의전투의지를보여주는‘추어조’(泥湫調),유머러스한‘참새조’도있다.바이족은또기타민족과마찬가지로대가(對歌)의방식으로서로에대한사모의정을표달한다.허나대가의의미는사랑전달에만있는것이아니라지식과지혜의겨룸이기도하다.때문에바이족의대가는미혼남녀나기혼남녀,중노년을막론하고모두가부른다.
무용:
바이족은노래잘부르고춤잘추는민족으로정평이나있다.일찍진한남북조시기바이족의선민의한갈래인전북(滇僰)은이미노래와춤,음악을유기적으로융합시켰다.지금까지산간지역에유전된여라가지원시무용종류에는답가무,조수류(鳥獸類)무용,무무(巫舞)등이있다.그중조수류무용은음악이없이추는순무용으로서노강바이족청년여성들이즐겨춘다.
조각:
바이족의조각예술은세계적으로도유명하다.주로석조와목조로나뉘는데석조는검천석종산(石鐘山)석굴과대리국경당(經幢)을대표로한다.그중남조대리국연간에파기시작한석종산석굴은중국남방의가장대표적인석굴의하나로‘서남돈황’으로불린다.그리고‘지장사경당’(地藏寺經幢)으로도불리는대리국경당은조형이아름답고조각기술이뛰어나‘전중예술의극품’으로불린다.바이족의목조는주로궁정과사찰,주민건축의장식용이며검천목조가가장유명하다.베이징인민대회당운남청의대문과목조병풍이바로검천목공의작품이다.
천문:
바이족은남조시기부터자신의역법이있었다.명나라바이족학자주사렴(周思濂)의‘태화갱누중성표’(太和更漏中星表)와이성위(李星煒)의‘기험방서’(奇驗方書)등은모두고대천문과의학을총화한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