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의 역사
사실상만족은민족고유의언어와문자가있다.만족의만어(滿語)는알타이어계에속하며만족의문자는16세기말,누르하치가창제했다.만문(滿文)은관변측문자로청나라때장기간사용됐고한때는중국전역에서광범위하게사용되면서대량의문헌자료도남겨중화민족문화유산보물고의진귀한보물로남았다.그러다청나라중엽이후만족들은만어를기본상사용하지않고한어북방방언을사용하기시작했으며일부특정된장소에서만만어를사용했다.그리고20세기80년대에이르러서는동북지역의일부편벽한집거마을에서생활하는일부노인들만이만어를구사하게되었다.
만족은 또 성씨가 무려 600여개나 되어 중국 각 민족 중에서 한족 다음으로 성씨가 많은 민족으로 꼽힌다. 그러나 신해혁명 후 대다수 만족인들이 한자 성을 쓰면서 오늘 날 많은 만족인들은 자신의 옛 성씨를 모르게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만족은 전국의 각 족 인민들과 함께 나라의 주인이 되어 민족평등 권리를 향유하고 있다. 1957년 베이징시 외곽에 일련의 만족향이 세워지고 만족이 산재해 있는 지역에서는 만족과 기타 소수민족 연합민족향이 설립되었다.
오늘 날 만족은 전국 각 족 인민들과 함께 중국부흥의 위대한 꿈을 실현하는 새로운 길에서 활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