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근교의레저관광山靑水秀,제비가사는집
산좋고물맑다는이쁜이름의산청수수(山靑水秀)는고향생각을불러주는다정한곳이었다.이번에나는처음으로회사의동료들과함께번잡한도심을떠나베이징외곽지시골에서주말을보내게되었다.
1,2층으로 된 500평방남짓한 농가의 1층 대청 처마밑에는 제비둥지가 2개나 있었다.눈을 떼지 못하고 올려다보니 새끼에게 뭘 잡아다 먹이는지 제비들이 새까만 꽁지를 둥지밖에 내밀고 달싹거린다.
"제비는 착한 집에서 살지. 집안에 둥지가 2개라… 주인이 무척 착한 모양이군."호기심을 가지고 한동안 제비둥지를 지켜보던 일행 중 한 사람이 밥상을 물리는 여성을 쳐다보더니 말한다.
"감사해요. 호호 사실 농가를 차려서 큰 일 할 마음까지는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음식을 항상 맛있고 깨끗하게 만들어 손님상에 올리고 싶은 마음으로 정성를 기울여 왔습니다."
농가의주인인몸매단아한여성은조미령이라고부르는살림군이였다.이창평구(昌平區)십삼능(十三陵)마욕방(麻峪房)촌에와서조선족농가집"산청수수"를5년째경영중인조씨는15년전길림성화룡시에서베이징에왔다.
얼핏 보기에 조씨네 "산청수수"는 규모나 장식은 농가집이 줄지은 마욕방촌에서 돋보이지 않았다. 건물 바깥에 "연변냉면"이라고 적혀 있는 것과 문안에 들어서자 오른켠에 흰김을 씩씩 내뿜는 커다란 조선족 쇠가마 2개가 주인이 조선족임을 설명해주는 것 외 특별한 것이 없었다.
손님들은 마을의 유일한 조선족 농가집인 "산청수수"에 자주 찾아오는 것 같았다. 조씨가 한 동료와 말을 나누는 짧은 몇분 사이에도 손님들이 여러명 찾아들었다.
동네의 짐작대로라면 금방 5월중순인데 (더워나는) 여름부터 늦가을까지는 적어도 한달에 400-500명씩, 겨울에도 한 200명씩 "산청수수"에 투숙한다. 그러나 식객까지 합치면 이 집을 찾는 손님이 대체 얼마인지 다들 모른다. 대다수 농가집처럼 조씨네도 음식점을 겸하고 있었다.
"니먼쓰충날라이더?(你们是从哪来的?당신들은어디서왔죠?)"마을에왜손님이많을가골몰하는데맞은켠식탁에서식사하던한한족중년이큰소리로묻는다.솔직히일행의뒤꽁무니를따라온나는이곳이어떤곳이며무엇때문에이곳에농가집이즐비한지잘모른다.400-500보밖에아아하게솟아두팔벌려동네를그러안은산들과산속에서우짖는새소리,그리고계곡에흐르는차가운개울이이곳도피서에꽤적합한곳이라는느낌을주었다.
"물론이죠. 부근에 팔달령장성과 명13릉이 있기 때문이죠." 자리를 잠간 뜬 사이 동료가 뭐라고 중년에 말을 건넨 모양이였던지 중년의 말문이 터졌다.
인근태생이라는 중년의 말대로라면 내외에 유명한 팔달령장성이 마욕방촌 서북쪽으로 40km 정도 되는 곳에 있고 명13릉이 동네 남쪽으로 한 4km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진(秦)장성과늘혼동되어만리장성으로불리는명(明)장성은하북성(河北省)산해관(山海關)으로부터산발을타고서쪽으로감숙성(甘肅省)하서주랑까지뻗어있다.이중팔달령구간즉,팔달령장성이만리장성관광의최적지다.팔달령장성은1953년관광지로개방된후1991년8월유네스코에의해"인류문화유산"으로지정되었으며지금까지미국전대통령닉슨과영국전총리마가렛대처,구소련의총서기고르바쵸프등국가원수를망라한내외관광객총1억3천만명이팔달령장성을찾았다.
명(明)13릉은명나라13명황제의무덤이모여있는고분군이다.2003년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등재된명13릉은이집트피라미드와더불어관광객들에게있어신비한곳이다.관객들이"명13릉을다보고나갈때면발을3번'쿵쿵'구르고손벽을3번'짝짝'치며소리높이'나갑니다'를연속3번외쳐야자신의영혼을겨우챙기고빠져나갈수있다"고말할정도다.
글쎄 팔달령장성이나 명 13릉을 거닌 관광객들이 딱히 마욕방촌까지 와 투숙한다고는 말할수 없겠으나 이러고 보니 이 두곳의 영기가 산줄기를 타고 이 곳 산수에 까지 스며있을 것으로 간주한 손님들이 동네에 몰리는게 영낙 없었다.
최근 불고있는 관광바람과 도시인들의 피서바람을 이용해 마욕방촌 인근 마을들도 농가집을 대대적으로 경영하고 있었다. 2010년 설에만 베이징 단거리코스 관광객수는 2009년보다 7.4% 늘어난 연 58만명에 달해 관광수입만 5300만원 올렸는데 그때쯤 "산청수수" 경영을 시작한 조씨도 상도에 밝은 편이였다. 대도시 근교에서 특색을 살려 가게를 운영해도 도심 못지 않게 수입이 짭짤해 질 시대가 왔던 것이다.
"사장님, 여기 얼마예요? 그리고 순대 한그릇 포장이요." 제가 한 대답에 동네에 손님이 몰리는 까닭을 알것 같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는 동료에 흡족한 중년이 요리메뉴에서 순대를 부른다.
메뉴에는 보신탕과 미나리무침, 바비큐, 냉면 등 조선족 전통음식이 많았다.
조씨는 순대 대신 미나리무침을 포장해서 중년에게 주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조씨네는 단골손님, 그마저 며칠전에 사전 주문을 해야 순대를 만들어두어 평소에는 순대가 없었다. 돼지창자는 활딱 뒤집어 밀가루와 소금을 뿌리고 썩썩 문지른 뒤 가위로 너덜너덜한 곱들을 잘라내야 했는데 돼지 한마리 창자를 씻는데만 두어시간씩 걸렸다. 거기에 찹쌀을 50원어치 넣고 순대를 쪄 만들면 솔직히 품만 들고 돈 떨어지는게 얼마 없었다.
그렇다고 미나리도 쉽게 캘수 있는 것은 아니였다.
동네에서 7-8km 떨어진 산골에 온 집식구 네댓명이 가서 1시간 꼬박 캐야 10kg 캘 정도이다. 미나리는 얕은 물속에 자라기 때문에 미나리를 캐려면 허리를 굽히고 5월 찬물에 발을 넣어 몇시간씩 견뎌야 했다.
반나절 캔 양으로 한주정도 식탁에 올릴수 있었는데 싼 값으로 굳이 시장에서 사오지 않는 것은 혹시 농약을 쳐 재배한 것일가봐 조씨네는 직접 산골에서 야생을 캐다가 사용했다.
중년도 가고 일행들도 각자 자리를 떴다. 사람들이 떠나자 대청에는 둥지밖에 나와 짹짹거리는 제비소리만 요란하다. 옛날 고향 시골집의 처마밑에서 늘 듣던 귀에 익은 소리이다.
대청벽에 걸어둔 "투도광흥중학교 93기 3반 동창모임-2014.09.13"(투도는 화룡 소속)이라 씌여진 운동셔츠가 눈에 문득 띠였다. 얼마전 농가집을 찾은 고향사람들이 남긴 것이라고 조씨가 자랑했다. 고향에 대한 한 여성의 그리움이, 타향에서의 조씨의 마음속 기둥이 대청안에 정겹게 울려퍼지는 제비들의 "요란한" 지저귐에 스몄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