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공 당대표의 이야기
18일개막한중국공산당제19차전국대표대회가7일간의회기를마치고24일성공리에폐막했습니다.2287명당대표가전국의8900여만명당원을대표해대회에참가했습니다.이들중기층당대표가33.7%를차지한771명에달해역사최고를기록했습니다.오늘은기층당대표의일원인농민공당원--하남(河南)성신양(信陽)시황천(潢川)현쌍류수(雙柳樹)진농민공당지부의황구생(黃久生)지부서기를만나보도록하겠습니다.
농민공 당지부 건설의 코기러기-황구생
6살에어머니를여의고4살난여동생과서로의지하면서마을사람들의도움속에서자란황구생은21년연속고향의독거노인700여명을돌봐주어고향인들로부터700명노인의아들로불리우고있다.전국노동모범인황구생이인솔한건축팀은두차례나건축업계의최고상으로불리우는노반(魯班)상을수상했다.황구생은또베이징대학광화(光華)관리학원에특례로입학한첫농민공대학생이다.이외에도황구생은--하남성정주(鄭州)의첫농민공당지부서기,전국우수공산당원,18차당대회와19차당대회당대표등많은타이틀을갖고있다.지금까지하남성에서전국우수공산당원영예를지닌당원은도합9명이다.
기층당조직건설은중국공산당조직건설의중점중의중점이다.습근평총서기는19차당대회개막식에서한보고에서당기층조직건설은당의로드맵과방침정책,결책배치를관철실행하는토대라고강조했다.19일오전습근평총서기는또귀주(貴州)성대표단토론에참가한자리에서당의뿌리는기층에있다며기층단건설을드팀없이강화해야한다고재삼모를박았다.
"기층 당조직건설을 꼭 다져야 합니다. 기초가 든든하지 못하면 대지가 흔들립니다."
기층 당원 대표인 황구생은 개막식 현장에서 보고를 들은 소감을 이렇게 터놓는다.
"총서기는 보고에서 서민들의 진정한 빈곤 퇴치를 강조했고 또 수차 우리 농민공을 언급했습니다. 보고를 듣고 나니 우리 농민공들의 삶이 피어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도모르게 아름다운 앞날을 동경하게 되고 또 힘이 솟는 것 같았습니다. "
1965년신양시황천현쌍류수진안강(晏崗)촌에서태어난황구생이6살되던해,어머니는4살난여동생과2살짜리남동생을남겨두고저세상으로떠났다.생계를위해사처를누비며품팔이를하는아버지는열흘,반달씩집을비우기가일쑤였다.부득불두살짜리남동생은다른집에이양하고황구생은4살난여동생과서로의지하며마을사람들의도움속에서자라났다.그때마을에황전순(黃傳順)이라는노당원이있었다.마을사람들의'기둥'으로불리우며언제나여유있게마을사람들의고충과번뇌를덜어주고해결사가되어주는황전순을보며황구생은어린나이에도장래훌륭한당원이되어마을사람들의'기둥'이되어고향사람들에게보답해야겠다는야무진꿈을꾸게되었다.이는경건한마음이자무궁한동력이되었다.
1983년 만 18세 난 황구생은 고향을 떠나 정주의 한 건축공지에서 잡일을 맡아하게 됐다. 수년간의 노력을 거쳐 황구생은 막일꾼에서 건축공지의 숙련된 전문가로 성장했다. 1998년 프로젝트 담당관리자가 된 황구생은 고향의 당위원회에 입당신청서를 냈다. 다년간 당조직의 전반적인 고찰을 거쳐 2003년 황구생은 마침내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비록 이미 14년이 지났지만 황구생은 입당선서를 할 때 그 격동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는 그때 그 시각이 머릿 속에 또렷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입당선서를 할 때 매우 격동됐었죠. 저는 반드시 입당선서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할 것입니다. 당조직은 우리 농민공을 각별히 관심하고 많은 보살핌을 주었습니다. 얼마나 큰 노력을 해야 우리를 키워준 당조직에 보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의인구대성(大省)인하남성은노무수출대성이기도하다.이가운데신양시는또하남성최대노무수출도시이다.노무수출인원가운데는당원들도적지않다.이런당원들은유동성이크고유동범위가넓다.시대에걸맞게기층당조직건설을잘추진하고유동당원들에대한교육관리를잘하기위해신양시는2004년부터유동당원관리에방점을둔"금교(金橋:골든브릿지)공사"를실시하기시작했다.바로외지에서일하는당원들이비교적집중된도시에기층당조직을건설해당원들이유동하지만유실되지않도록확보하는것이다.그야말로기러기떼가천리를날아도낙오하는기러기가없게하자는취지다.
19차당대회대표인교신강(喬新江)신양시위서기의말이다.
"신양시의 노무인원이 아주 많습니다. 약 230여만명이 되는데요, 그중에 당원이 수만명 됩니다. 유동당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우리는 '금교'공사를 실시했습니다. 고향과 외지 일터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20여개 도시에 358개 당지부를 세워 유동 당원과 고향 당조직간의 뉴대를 끈끈히 했습니다. 이런 당조직이 바로 당원의 집입니다. 우리는 (유동당원들이) 고향 땅을 떠났어도 당의 품 속에서 시장을 헤쳐나가도록 했습니다."
당지부서기인황구생은주동적으로유동당원자료를작성하고유동당원위챗채팅방을만들어평일에비정기적,비고정적장소에서당조직생활을개최했다.이외황구생은또농민공취업준비양성에모를박고그들의생활개선에주력해왔다.농민공들이보다체신있게,존엄있게생활하도록돕기위해서였다.1986년부터선후로1만2천여명이황구생을따라타향의건축공지에서일하면서모두노련한솜씨를익혔다.황구생의건축팀은두차례나건축업계최고상인노반상을수상하고국가급,성급,시급우질공사상을무려60여차례나수상하면서'하남건축업계철군(鐵軍)'으로명성을떨쳤으며고향을위해연간노무소득3억여원을올렸다.
현재 정주 주재 황천현 농민공 당지부는 이미 2005년의 하나에서 열개로 늘었다. 기층당조직 건설사업 발전을 보다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데 취지를 둔 정주 주재 황천현 유동당원실무위원회가 2017년 9월 설립됐고 황구생은 위원회 서기로 발탁돼 10개 당지부의 총 380여명 당원 관리를 맡게 됐다. 이로부터 정주에서 일하고 있는 황천현 농민공 당원들에게는 새집이 마련됐고 든든한 당조직이 1만 2천여명 농민공들의 뒷심이 되었다. 황구생의 말이다.
"어깨의 책임이 무겁습니다. 당실무위원회 책임을 다해 당원들을 한데 뭉쳐 일이 있으면 다함께 하고 어려움이 있으면 다함께 극복하고 해결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힘이 솟구칩니다. 특히 습근평 총서기의 보고를 들은 후 더욱 힘이 납니다. 우리의 삶도 반드시 갈수록 좋아질 것입니다."
자신을 따라 고향을 떠난 1만 2천여명 고향인들을 잘 챙기는 외, 황구생은 또 20여년을 하루와 같이 고향의 700여명 독거노인들을 보살피면서 고향인들로부터 700명 독거노인의 아들로 불리우고 있다. 1996년부터 해마다 설날이 다가오면 황구생은 수만원의 사비를 털어 700여명 독거노인들을 위해 설날 음식이며 옷가지들을 챙겨주었다. 선행을 자주 베푸는 황구생이지만 유독 자신에게만은 깍쟁이다. 옷깃이 헤어지면 재봉사를 찾아 기워매고 다시 입군한다.
'사랑은끝이없어라'.황구생에게아주어울리는말이다.2008년5월12일사천성문천(汶川)에서강진이발생한후황구생은즉각5만원의특수당비를중앙조직부에납부했다.이는하남성농민공당원이지진재해지역에기부한첫특수당비였다.이어서황구생은선후로세차례에걸쳐문천지진재해복구에총15만원의성금을냈다.황구생은이렇게말한다.
"당의 배려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저도 없습니다. 조직의 배려가 있었기에 우리 농민공들도 외지에서 돈을 벌수 있었죠. 고향과 사회에 보답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양심이 찔릴 것입니다. 모든게 당의 배려 덕분입니다."
2013년 3월 1일, 중국공산당중앙당학교 건교 80주년 경축대회 및 2013년 봄철 학기 개학식에서 습근평 총서기가 중요 연설을 발표했다. 습근평 총서기는 학구열이 있어야 진취할 수 있다며 중국공산당원은 배움을 통해 오늘날에 이르렀고 필연적으로 배움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구열이 높고 진취적인 황구생은 습근평 총서기가 강조한 실천 과정에 배우고 배우면서 실천하며 배운 것을 활용하고 활용 과정에 또 배우며 배우는 과정에 성장해야 한다는 도리를 행동에 옮겼다. 2013년 황구생은 베이징대학 광화관리학원에 특례입학하면서 이 학원의 첫 농민공대학생으로 되었다.
"저를 따라나서 일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면서 관리분야의 지식이 부족함을 느꼈죠. 그래서 학교에서 기업관리를 배워 팀을 잘 이끌고 싶었습니다."
특례로 입학한 황구생은 학원 지도부의 초청으로 개학식에서 신생대표의 자격으로 자신의 성장스토리를 들려주었다. 황구생은 선후로 2013년 9월과 2017년 9월, 두차례 베이징대학 백년대강당(베이징대학 백주년 기념관)에 올라섰다.
당대표로서의 향후 5년 임기기간의 직무 및 직책 이행 계획에 대해 황구생은 이렇게 피력한다.
"지금 우리는 격동으로 차넘치는 좋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중국 꿈이 우리를 부르고 고무합니다. 당원인 저는 시대의 기대에 부응해 열심히 일하면서 이 사명을 완수하고 중국의 꿈 실현을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이바지할 것입니다. 중국 꿈은 모두의 꿈입니다. 저의 꿈은 보다 많은 농민공들을 단합해 똘똘 뭉쳐 함께 부유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취재/글/번역: 한창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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