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步當車(안보당거)
◎글자풀이:편안할안(安ān),걸음보(步 bù),마땅할당(當 dàng),수레거(車 chē).
◎뜻풀이:①차를타는대신천천히걸어가다.②본래는안빈절검(安貧節儉)의뜻.
◎출전:한나라(漢)류향(劉向)『전국책•제책4(戰國策•齊策四)』
◎유래:전국시대(戰國時代)때제(齊)나라에안촉(顔斶)이라는현자가있었다.그는재능과도략(韜略)이출중했으며성품이정직하여종래로권세에아부하지않았다.제선왕(齊宣王)이안촉의명성을듣고그를궁에불러들였다.
궁에 들어온 안촉은 대전 앞 계단까지 와서는 걸음을 멈추었고 제선왕이 이상하게 여겨 앞으로 들라고 명했다.
그러나 안촉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제선왕을 향해 큰 소리고 말했다. “대왕께서 이리로 오시옵소서.”
이를 본 대신들이 어찌 대왕을 오시라 하느냐고 안촉을 꾸짖었다.
허나 안촉은 전혀 주눅이 들지 않고 말했다. “여러 신료들의 말씀은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요. 내가 대왕의 말대로 가까이 간다면 권세에 굴복하는 것이고 이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아첨쟁이란 말이요. 허나 대왕께옵서 손수 소생에게 다가 오신다면 이는 현명한 자를 예로 맞이하는 군주의 아량을 보여주는 것이 되오. 이런 두 가지 상황이 있을 진대 나를 권세에 아부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옳은 것이요 아니면 대왕께서 인재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옳은 것이요?”
제선왕이 안촉의 말에 불쾌해하며 물었다. “그럼 네가 보기에 한 나라 군주의 몸이 귀한 것이냐 아니면 현자가 존귀한 것이냐?”
안촉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답했다. “당연히 박식한 현자의 몸이 귀한 것이옵니다. 대왕께서는 이 일을 토론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선왕이 참 고현 놈이라고 생각하고 또 물었다. “네가 하는 말에 어떤 근거라도 있는 것이냐? 아무 소리나 지껄여서는 안 될 것이야.”
“물론있고말고요.”안촉이태연하게말을이어갔다.“얼마전진(秦)나라가수십만대군으로제나라를공격한적이있사옵니다.이들은‘유하혜(柳下惠)묘지의사방50보이내의수목을자르는자는죽음에처한다’는군령을내렸습니다.이와함께‘제선왕의목을베는자는만가구를거느리는제후에봉하고천냥의금을상으로내릴것이다’는군령도내렸다고하옵니다.진나라의군령으로보면대왕의머리는현자인유하혜가묻힌묘지주변의나무보다못한것이되니당연히현자와는비교도안되는것입니다..”
반박할 말을 잃은 제선왕이 불쾌함을 드러냈다. 이를 본 신료들이 나섰다. “안촉아 이리 오너라. 내가 가르쳐주지. 우리 대왕께서는 전차 천대를 거느리는 나라의 군주이시니 사방 천지 누가 그 영을 거부한단 말이냐? 이 나라의 모든 것은 대왕의 것이고 백성들은 모두가 머리를 조아린다. 너희 선비 놈들은 너무 졸렬하구나.”
안촉이이를반박했다.“틀린말씀이오이다.이전에대우(大禹)가나라를다스릴제제후국은만을넘었소이다.바로선비들을존중했기때문입니다.상(商)나라탕(湯)왕때는제후가3천을넘었으나작금에는겨우24개밖에안됩니다.이로부터볼때선비들을귀하게여기는것이그관건임을알수있소이다.예로부터지금에이르기까지실용적인일을하지않고천하에명성을날린사람은없었습니다.하기에대왕께서는다른사람에게가르침을청하지않음을수치로여겨야하옵고직위가낮은사람에게서배우는것을창피하게생각해서는아니될것이옵니다.”
안촉의 말에 제선왕은 자신이 틀렸음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선생의 고견을 듣고 나니 저의 잘못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스승으로 모시고 싶으니 이후에는 궁에 머무르시오. 매일 좋은 음식을 드시고 밖에 나갈 때는 수레를 타도록 하며 부인과 자식들은 화려한 옷차림을 할 수 있을 것이요.”
허나안촉은이를사양하며말했다.“산에서나는옥은옥돌장인의손을거치면그모양을잃게됩니다.비록여전히귀한옥이나진면모가달라집니다.가난한시골에살던선비가벼슬길에오르면부귀와공명을누리게됩니다.그사람이고귀하고현명한사람이될수없다는것은아니지만본연의풍채와마음은파괴될것이옵니다.하기에소인이돌아갈수있도록허락해주시옵소서.매일늦게변변찮은밥을먹을지라도고기를먹듯맛있을것이고천천히걸어서가는것역시수레를타는것못지않을것입니다.(安步當車)이런안정된세월을보낸다면권문세족못지않은것이고조용히자신을가다듬는것역시즐거움이아니겠습니까?”
말을 마친 안촉은 제선왕에게 하직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