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에게-습근평 주석과 부친의 가족•국가 사랑

2018-06-17 14:02:05 CRI

“부친한테서 물려받고 계승하고 싶은 보귀하고 고상한 품격이 아주 많습니다.”

습근평 주석의 사무실 눈에 잘 보이는 곳에는 각이한 연대의 가족사진이 여러 장 놓여있다. 그 중 습근평 주석이 연로한 부친이 앉은 휠체어를 밀며 아내, 딸과 함께 산책하는 사진이 있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중화민족의 이 전통적인 미덕은 습근평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렸다.

(습근평과 부친 습중훈, 부인 팽려원, 딸의 가족사진)

출처: <습중훈화전>(習㑖勛畵傳)

습근평은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한 살도 안되어 모친 제심(齊心)의 직장이 집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금방 젖을 뗀 습근평을 부친이 돌보게 되었다.

당시 국무원 부총리 겸 국무원 비서장을 역임한 부친 습중훈은 가사도우미도 청하지 않고 여가시간을 타 아이 넷을 돌보며 그들을 목욕시켜주고 빨래하는 등 가사를 전담했다. 부친은 이를 천륜지락으로 여기며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에는 항상 싱긍벌글이였다.

“비록 중훈동지는 아이들을 아주 사랑했지만 그들을 응석받이로는 키우지 않았습니다.” 모친 제심은 습근평이 어릴적부터 누나가 입었던 옷을 입고 빨간 헝겊신을 물려 신었다고 회억한다. 어느 한번 습근평이 동학들의 조롱을 받고 누나의 헝겊신을 신으려 하지 않자 부친은 “물감을 들여 신으면 되지 않는가”고 하셨다.

습근평의 눈에 비친 “부친의 근검절약은 각박하다 할” 정도였다.

“우리는 어릴적부터 부친의 이런 교육으로 근검절약의 습관을 키우게 됐습니다.”

본보기의 힘은 위대한 것이다. 습중훈의 일생은 혁명의 일생, 빛나는 일생,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해 복무한 일생이였다.

“학생들이 중국혁명과 건설, 개혁의 역사지식을 더 많이 장악하고 영웅모범인물들을 더 많이 따라배워 당과 조국,인민을 열애하고 실제행동으로 홍색유전자를 자손만대 전해 내려가길 바랍니다!”

올해 ‘6.1'절을 앞두고 습근평 주석이 어린이들에게 보낸 메시지가 바로 그의 인생경험이다.

그는 부친에게 보낸 가서에서 진지한 고마움을 이렇게 적었다.“부친한테서 물려받고 계승하고 싶은 보귀하고 고상한 품격이 아주 많습니다.”

때는 2001년, 부친 습중훈의 88세 생일이여서 일가족 모두 단란히 모였지만 당시 복건성 성장을 역임한 습근평만이 분망한 사업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부친에게 깊은 정 어린 축수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이렇게 적고 있다.)

습근평 주석은 편지에서 부친의 “진솔함과 충직함”에 경의를 표하며 “부친과 같은 인간이 되련다”고 적었다.

습근평 주석은“부친이 당과 인민을 위해 공훈을 세우고 업적을 쌓았으며”, “종래로 공로를 자처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으며 자신의 휘황한 업적을 흘러가는 구름처럼 간주”한데 대해 경의를 표하고 “부친처럼 일처리를 할 것”이라고 적었다.

습근평 주석은 “부친의 마음속에는 시종 밝은 등대가 있어 영원히 정확한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경의를 표하며 부친한테서 강한 정신적 에너지를 물려받을 것이라고 적었다.

“부친은 마치 황소마냥 중국인민을 위해 묵묵히 일했습니다. 이는 저를 필생의 정력을 인민군중을 위해 봉사하는 사업에 이바지해 금수중화와 고향의 친인들에게 보답하도록 고무합니다.”

(1960년 습중훈과 제심이 자녀와 친우들과 북해공원에서 ) 출처: <습중훈화전>

이는 후배로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부친에 대한 존경이자 혁명후대로서 선배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맹세이기도 하다.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바로 부모에 대한 최대의 효도이다!”

부친은 습근평의 편지를 읽은 후 그가 다망한 사업 때문에 축수연에 참가하지 못한 사정을 이해하면서 가족과 자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사업을 중히 여기고 국가의 대사를 중히 여겨야 합니다.”,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바로 부모에 대한 최대의 효도입니다.”

습근평에 대한 부친의 영향은 소리없는 잔비마냥 사소한 일상에 슴배여있다.

습근평은 학창시절 줄곧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설명절이 되어야만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형제자매들은 모두 벽에 붙어 서서 부친의 ‘훈화'를 듣는다.

“자신이 어떻게 혁명에 참가하게 되었는지 얘기해주시고 우리도 앞으로 꼭 혁명해야 된다면서 혁명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습근평 주석은 어느 한차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혁명교육이 은연중에 자식들의 몸에 배이게 되었다”고 회억했다.

짙은 혁명분위기의 훈도하에 습근평 주석은 젊은 시절 선후로 8부의 공청단 입단 신청서와 10부의 중국공산당 입당신청서를 썼으며 20세 되는 해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대대 당지부서기로부터 중국공산당 총서기, 평범한 공민으로부터 국가주석에 이르기까지 습근평은 시종 실제행동으로 ‘전심전의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취지를 실천해왔다.

(1978년8월 해남, 습중훈과 여름철 사회실천 활동에 참가한 습근평) 출처: <습근평화전>

하룡(賀龍)의 딸 하첩생(賀捷生)은 기고글에서 이렇게 회억했다. “습근평 동지가 정치에 입문한 뒤 그의 부친 습중훈 동지가 아들에게 폐부에서 우러 나오는 조언을 했습니다. ‘네가 얼마나 대단한 관직에 오르던 근면하게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진심으로 백성들을 염두에 두고 군중들과 마음을 나누고 친화력이 있는 간부가 되어야 한다.'”

습근평 주석은 부친의 이 말을 가슴속 깊이 아로 새겨듣고 이를 평생의 분투목표로 정했다.

“자신의 부모를 사랑하듯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

2013년 11월, 습근평 주석은 호남(湖南) 십팔동(十八洞)촌에 고찰조사연구를 갔다. 당시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 총서기를 본적이 없는 묘족 처녀 스파좐은 습근평 주석을 집안으로 모신 후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인민의 근무원입니다.” 습근평 주석이 미소를 지으며 자아소개를 했다. 소박한 이 한마디는 자리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히 적셨다.

(진정한 빈곤을 보아내야 하고 진정한 빈곤을 구제하며 진정으로 빈곤을 구제해야 한다. 인민의 수령 습근평 주석은 전국의 모든 극빈지역을 다녀갈 것이라는 약속을 부지런한 발걸음으로 실천했다.)

이 기간 중국의 빈곤발생률은 10.2%에서 4%이하로 하락하고 6천만명의 빈곤인구가 안정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났다. 빈곤탈퇴의 큰 규모와 빠른 속도가 세계의 감탄을 자아냈다.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을 안고 습근평 주석은 천가만호의 아름다운 생활을 자신의 분투목표로 정했다.

“인민들이

보다 높은 교육,

보다 안정된 직업,

보다 만족스러운 수입,

보다 믿음직한 사회보장,

보다 높은 수준의 의료보건서비스,

보다 낳은 거주조건,

보다 아름다운 환경,

보다 풍부한 정신문화생활을 누릴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백성들에게 한 공산당의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습근평 주석이 힘주어 말한다.

습근평 주석의 인민중심의 발전사상은 이미 새 시대 중국경제사회발전의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번역/편집: 주정선

Korean@cri.com.cn


뉴스:
국내 국제
문화:
뉴스 성구이야기 역사인물
중국어교실:
매일중국어 실용중국어회화
경제:
뉴스 인물
관광:
중국관광 관광앨범 먹거리
포토:
국제 국내
오디오
영상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