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촌, 산업발전으로 면모 일신

2018-10-22 15:25:23 CRI
좋은 자람새를 보이는 소강촌의 벼

40년전, 안휘성(安徽省) 봉양현(鳳陽縣) 소강촌(小崗村)에서 성세호대한 중국 농촌개혁의 붐이 시작되었다. 이는 중국의 개혁개방 진척에 심원한 영향을 가져다 주었다. 지난날 중국의 수많은 농촌들과 마찬가지로 발전중 곤경에 처했던 소강촌은 오늘날 산업발전의 길을 개척해 변모를 꾀하고 있다.

풍수를 맞은 소강촌은 논밭에서 그윽한 벼향기가 풍겨온다. 농민들에게 있어서 수확기가 돌아가는 소리만큼 귀맛 당기는 소리는 없다. 수확을 앞둔 넓은 논을 보면서 55세 정석병(程夕兵)씨의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난다. 정석병 농민은 봉양현에서 소문난 알곡대규모재배호이다. 최근 몇년간 그는 농민들로부터 30여 헥타르에 달하는 경작지를 양도받았다. 토지이전비용과 재배원가가 증가하면서 정석병 농민의 압력도 따라서 커졌다.

"토지이전 가격으로 보면 헥타르당 1만 2천원을 지불해야 합니다. 자연재해가 생기면 헥타르당 15만원 정도를 손실 봅니다. 대규모 재배호나 토지를 이전 받은 사람들은 리스크가 큽니다."

40년전,소강촌의 농가 18가구가 도급제 계약서에 손도장을 찍으면서 중국 농촌개혁의 서막을 열었다. 하지만 수많은 중국농촌들과 마찬가지로 소강촌 역시 1990년대 후기부터 발전곤경에 빠졌다. 이른바 "배불리 먹는 문제는 해결했지만 20여년간 치부의 길에 들어서지 못한"경우가 발생했다. 소강촌 인근의 공사장에 와 공장을 세운  판판(盼盼)식품그룹 채금안(蔡金垵) 이사장은 한마디로 그 문제점을 지적했다.

"향촌진흥에서 보편적으로 산업고리가 취약합니다. 강유력한 산업의 지지가 없으면 투자는 부진하기 마련입니다."

사실상 산업발전과 창업에 따른 수입증대는 소강촌 촌민들의 오랜 염원이다. 엄여산(嚴餘山) 촌민의 아버지인 엄굉창(嚴宏昌) 촌민이 바로 40년전 손도장을 찍으며 도급제에 앞장섰던 사람들 중 한사람이다. 개혁붐과 더불어 1992년 엄여산 촌민은 가장 먼저 마을을 벗어난 젊은이로 되었다.엄여산 촌민을 비롯한 새세대 소강촌 촌민들은 외지에서 견식을 쌓았다.  창업이 어렵고 발전이 더디던 문제가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큰 개변을 가져왔다. 엄여산 촌민의 말이다.

"소강촌은 개혁 40년간 줄곧 전통농업을 위주로 했습니다. 산업화 변혁은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2014년 시기가 비교적 성숙되었습니다. 정책적 지지가 있었고 사람들의 사상관념이 전변되었으며 시대적 발전과 더불어 모두들 새로운 돌파와 혁신을 가져와야 한다고 인식했습니다."

오늘날 소강촌 입구의 도로 양켠에 나붙은 "천하의 앞장에"라는 표어가 유표하게 안겨온다. 표어 아래에는 중국 현대농업의 인솔자로 불리는 흑룡강 북대황그룹의 소강촌 시험재배 우질 벼 30여 헥타르가 줄지어 있다. 동북에서 온 조명무(趙明武) 씨는 소강촌에서 근무한지 1년이 되어간다. 소강촌 주재 북대황 그룹 기술 책임자인 조명무 씨는 자신이 꿈꾸는 소강촌 농업의 미래 청사진을 그렸다.

"소강촌 농업의 미래발전은 농업제품브랜드화, 농업제품일체화, 농업재배표준화,농업관리규범화를 꼽을수 있습니다."

북대황그룹이 소강촌과 처음 손을 잡았을 때는 수원지와 멀리 떨어지고 지세가 평탄하지 못한 한전은 경작재배조건이 이상적이지 못했다. 북대황그룹은 표준화전답개조와 규범화재배기술을 운용했으며 벼 육모로부터 모내기에 이르기까지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농업을 근본으로 하는 소강촌 촌민들은 진정으로 규모화 농업과 과학재배의 힘을 경험하게 되었다.

개혁발전의 조류속에서 소강촌혁신발전의 내재적 동력도 발굴되었다. 안휘 봉보(鳳寶) 알곡기름식품(그룹)유한회사 반묘묘(潘苗苗) 지배인은 최근 몇년간 갈수록 많은 젊은이들이 귀향창업에 나섰으며 자신 역시 고향에 알곡식품가공 프로젝트를 인입했다고 소개했다.

"잡곡옥수수는 시장에서 1원-1원 50전에 거래되는데 우리는 고품질의 옥수수로  옥수수 함량이 높은 파스타 면을 생산해 시장에서 킬로그램당 30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제품의 시장 공간도 아주 큽니다. 소강촌의 산업원은 우리의 좌표설정과 매칭됩니다. 저는 소강촌에 프로젝트를 인입해 정밀가공을 할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소강촌의 창업발전이 흥기하기 시작했지만 조상대대로 농업에 종사해 온 촌민들에 있어서 창업은 여전히 난제로 되었다. 농민들을 도와 수입을 늘리기 위해 소강촌은 2018년부터 "인터넷+도급"의 발전 모식을 추진했다. 봉양소강과학기술유한회사 왕휘(王輝) 총지배인은 소강촌 주요도로 양켠의 집집마다에 붙어있는 큐알 코드를 가리키며 이렇게 소개했다.

"이 거리를 따라 걷다보면 집집마다 큐알 코드가 붙어있는 것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모바일 스캔을 통해 이들이 운영하는 인터넷상가에서 직접 제품을 구입할수 있습니다. 촌민들은 제품이나 물류를 별도로 찾을 필요가 없으며 저희가 통일적으로 배치합니다. 우리는 농민들을 위해 전문 농산물거래플랫폼을 구축해 농가의 인터넷 상가와 도시의 소비자들을 직접 연결시켜주었습니다. 현재 300여 가구가 개통했는데 수익이 괜찮은 농가는 연간 2만원을 수입하며 월평균 수익이 1천원-2천원 정도가 됩니다."
 
개혁은 영원한 진행형이다. 현대농업발전과 농민수입증대의 길에서 소강촌의 개혁스토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번역/편집:강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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