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을 보호하는 '눈'

2017-08-07 14:07:58

모든 산림의 화근은 산불입니다. 하북(河北)싸이한바(塞罕坝:새한패)국유기계임장에서는 이미 적외선 레이더 탐지기와 영상감시시스템 등 과학기술 수단을 도입했지만 인공 감시를 여전히 매우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방화를 감시하는 방화감시원은 산림보호의 '눈'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몇 세대의 심혈이 깃든 산림을 보호하는 것 또한 그들의 유일한 염원이 되었습니다.

46세의 류군(劉軍)씨는 싸하한바국유기계임장의 방화감시원입니다. 조망대에 올라 창문밖을 보노라면 문외한들의 눈에는 녹색산림밖에 보이지 않지만 류군씨는 반경 수십킬로 내의 산림 곳곳의 지명을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류군씨는 머리속에 싸이한바 임장의 지도가 있을 뿐아니라 싸이한바 임장을 꿰뚤어볼 수 있는 '혜안'을 지녔습니다. 이러한 능력에 대해 방화감시를 배우고 있는 그의 아들 류지강(劉志鋼)씨는 혀를 내두릅니다.

싸이한바 임장의 방화감시원에 대해서는 엄지손가락을 내밀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 것은 그들의 직책이 중요해서일뿐 아니라 망화루가 인가가 드물고 지세가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방화감시원들은 오랜 기간 보통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운 외로움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싸이한바 임장에는 9개의 망화루가 있습니다. 그중 8개는 여가시간의 고독을 달래게 하기 위해 부부가 공동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망화루일을 하려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2006년에 산림보호요원이였던 류군씨는 작업구에서 일하던 안해 제숙염씨와 함께 임장 정상에 있는 망화루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그의 부모가 일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류군씨의 말입니다.

"어머님의 말에 의하면 저는 5살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때는 허름한 오두막에서 살았고, 길도 없었고 어디를 가든 걸어서 갔어야 했습니다. 당시 주위에는 나무조차 없었지요. 저는 이곳에서 태어났고 좀 큰 후 아버지가 임장부로 전근하면서 이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류군 부부는 비록 부부동반으로 망화루에 있지만 이곳 생활은 외롭고 단조롭기 그지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 정경을 회억하면서 류지강씨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버지는 이곳에 온지 반년이 지났어도 적응이 안되고 너무 괴로운 나머지 산림을 향해 외치기가 일쑤였다고 합니다."

류군 부부는 괴로움이 쌓이면 초조한 정서로 말다툼도 잦았다고 합니다.

올해로 류군 부부는 망화루에서 일한지 11년이 됩니다. 해마다 반년이 넘는 방화기간동안 15분에 한번씩 보고를 해야 했고 방화 비상기에는 저녁에도 한시간에 한번씩 보고를 해야 했습니다. 하는 일은 단조롭고 긴장하지만 그들 부부는 호흡이 잘 맞는 편입니다.

매일 산림을 벗삼고 있는 류군 부부는 망화루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현성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면 오히려 적응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지금은 망화루가 더 집같아요. 현성에 돌아가는 찻수도 적어졌고 오히려 불편합니다. 현성에는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복잡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현성에 하루 이틀 정도만 있어도 뭔가 잃어버린듯한 느낌을이 들어서 이곳이 생각납니다."

류군 부부는 올해 6월에 아들 류지강씨가 결혼할 때에야 현성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들을 생각하면 이들 부부는 죄책감이 밀려온다고 합니다. 임장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부부도 류지강씨가 초등학교를 다닐때는 현성에서 혼자 생활하도록 했습니다. 한창 부모 사랑을 받아야 할 나이에 부모가 곁에 없었던 류지강씨는 당시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때는 부모님이 매우 원망스러웠습니다. 임장의 산림도 매우 원망스러웠구요. 왜냐하면 저의 곁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하고 생활하는 여건이 간고한 탓에 40여세밖에 안되는 류군 부부지만 실제 나이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의 일과 생활에 매우 만족하며 가장 큰 소망이 퇴직한 후에도 이 산림을 계속 지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의 이러한 마음을 류지강씨는 읽어냈습니다. 그는 상해의 직장을 그만두고 임장에 와서 진화구조대의 임시직에 취직했습니다. 방화기간이 아닐때면 그는 망화루를 찾아 부모님을 돌보면서 그들이 퇴직한 후 그들의 일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류군씨는 처음에는 아들이 자신의 일을 아들이 이어가는데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는 아들이 미덥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류지강씨는 실제행동으로 아버님을 설득했고 류지강씨의 아내도 남편의 결정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류군씨는 아들이 계속해 그들의 평생 심혈을 몰붓은 이 산림을 지켜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번역/편집: 한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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