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길의 이웃집에는 큰 대추나무가 있었고 대추가 탐스럽게 열린 나뭇가지가 담을 타고 왕길의 마당으로 넘어왔다. 왕길의 아내가 보니 대추가...
혜문왕은 옥돌장인을 보내 옥석을 캐게 한 후 이를 소의 모양으로 조각하게 했으며 소의 몸뚱이는 그 내부를 비운 후 비단을 넣게 했으며...
관우가 이끈 형주군은 연전연승의 막강한 전투력을 보이면서 파죽지세로 공격해 선후로 양양(襄陽), 번성(樊城)을 함락했고 성을 지키던 장수 조인(曹仁)...
손권의 이 임명에 대해 동오의 많은 노장군들은 이해할수 없었다. 연륜이나 경력으로 볼때 육손이 삼군통수를 맡을 자격이 없다고 여겼던것이다...
기원 227년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가 사망하고 조예(曹睿)가 보위에 올랐는데 사서에서는 위명제(魏明帝)라 칭한다. 명제는 성정이 잔인했고...
유비는 형주에서 할일없이 오랜 기간을 보내는데 지내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어느날 유표가 연회를 마련해 유비를 초대했다. 두 사람은...
삼국시기 촉한의 황제 유비(劉備)가 붕어하니 유선(劉禪)이 황위를 승계하고 조정의 군정대권을 승상인 제갈량에게 맡겨 처리하게 했다. 제갈량은 오나라(吳)...
삼국시기 조조(曹操)는 서주(徐州)를 공격하려 했으나 승산이 크지 않은지라 책사 순욱(旬彧)을 불러 의논했다. 순욱은 조조의 계획을 듣고나서 즉시 말렸다...
삼국(三國)시기 촉나라(蜀)의 유비(劉備)가 죽은후 유선(劉禪)이 보위를 승계했다.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은 조정의 대소사를 총괄하면서 촉나라의 실질적인...
삼국시기 위명제(魏明帝)때 노육(盧毓)은 시중(侍中)을 맡다가 후에는 이부상서(吏部尙書)로 승진했다. 그는 성정이 정직하고 충성심이 남달라 위명제의...
곽가는 거칠것없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당신의 주공은 옛 사람들이 예의로 재능있는 사람들을 포용하는 방식만 답습할뿐 인재를 등용하는...
어느 하루, 오나라의 군주 손권(孫權)이 양축을 불러 손패의 재능에 대해 물었다. 양축은 손패가 문무를 겸비했으니 응당 태자로 되어야 한다고 극력 설명했다...
어느날 저녁무렵 화타가 병자들의 병을 보고 있을때 두명의 병자가 대문에 들어섰다. 한명은 부사(府使) 예심(倪尋)이었고 다른 한명은 상인인 이연공(李延共)...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는 한나라(漢)의 정권을 탈취해 위문제(魏文帝)로 등극한 후에도 재능이 뛰어난 동생 조식(曹植)을 의심하고 경계했다. 위문제는...
왕찬(王粲)은 동한(東漢) 말년의 유명한 시인이다. 총명이 과인하고 한번 본것은 잊지 않았다. 어느 한번 친구와 함께 놀러 나갔다가는데 길옆에 있는 비석을...
강유는 아주 담대했는데 제갈량의 유지를 이어 중원(中原)정벌을 위해 아홉차례나 출정했으나 끝까지 승전고를 울리지는 못했다. 후에 위나라...
동한(東漢) 말년에 양주(凉州)에 할거하고 있던 지방군벌 마등(馬騰)의 아들 마초(馬超)는 아버지의 원쑤를 갚기 위해 서량태수(西凉太守) 한수(韓遂)와...
삼국시기 촉나라(蜀) 황제 유비(劉備)가 죽은후 승상 제갈량(諸葛亮)이 유비의 아들 유선(劉禪)을 보필해 즉위시키는데 그가 바로 후주(後主)이다...
유비(劉備)는 한나라(漢) 황실을 회복하기 위해 일찍 세 번이나 남양(南陽)에 있는 제갈량(諸葛亮)의 초갓집을 찾았으며 이에 감동한 제갈량은 하산해...
관도(官渡)전투에 앞서 원소(袁紹) 수하의 허유(許攸)는 원소가 군량과 마초를 쌓아둔 중요한 거점인 오소(烏巢)를 기습하라고 조조에게 제안했다...
삼국시기 제갈량(諸葛亮)의 형인 제갈근(諸葛瑾)에게는 제갈각(諸葛恪)이라 부르는 아들이 있었는데 어릴때부터 총명이 과인했고 어른이 된 후에는 오나라(吳)...
동한(東漢) 말년, 동탁(董卓)의 부하장수인 장제(張濟)가 죽자 그가 거느리던 군사는 조카 장수(張繡)가 통솔하게 되었다. 얼마후 장수는 조조(曹操)에게...
유비가 죽은후 제갈량은 재능이 평범한 후주 유선을 잘 보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제갈량더러 작위를 받고 왕으로 칭하라고 권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는 어릴때부터 부친인 조조(曹操)를 따라 전장을 누볐는데 기마술에 능하고 병장기를 잘 다뤘다. 그는 또 독서도...
원소의 세력범위 이북의 요동(遼東)과 요서(遼西)와 북평(北平)(현재의 하북 동북부 지역) 세 군에는 소수민족 부락연맹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주유(周瑜)는 자가 공근(公瑾)이고 동한(東漢) 말년 동오(東吳 오나라)의 명장이다. 주유는 용모가 준수해 “주랑(周郞”이라는 미칭을 얻었다...
삼국이 정립하던 시기,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은 후방을 공고히 하기 위해 기원 225년에 대군을 이끌고 남방정벌에 나선다. 정벌을 순조롭게 마치고...
연나라의 재상인 소진(蘇秦)은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주변 나라들을 다니면서 연합해 공동으로 진나라에 저항해야 한다는 주장을 역설했다...
전국시기 제(齊)나라에는 추기(鄒忌)라고 하는 대부가 있었는데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를 가진 미남이었다. 하루는 추기가 조회에 참석하려고...
한선제(漢宣帝) 류순(劉詢)은 황제로 옹립되기 전에 민간에서 꼬박 18년 유랑하였다. 이 18년간 류순은 일반 백성의 갖은 시련과 고난을 다 겪었다...
춘추초기 제후국의 패자가 되겠다는 웅대한 포부를 지녔던 초(楚)나라 장왕(庄王)이 수년간 혼신을 힘을 다해 치국 방법을 모색한 끝에 마침내...
형가(荊軻)는 전국시대 말기의 이름난 자객이었다. 그는 위나라(衛) 사람이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경경이라고 불렀다. 후에 그는 연나라(燕)로 가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또 그를 형경이라고 불렀다...
사자성어 전공진기는 "지금까지의 공로나 쌓아온 노력이 전부 수포로 돌아가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말을 돌려보내고 소를 풀어놓는다는 뜻으로 전쟁이 끝난 뒤 평화로운 시대가 온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바른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뜻으로 바르게 타이르는 말일수록 듣기 싫어함을 이른다.
눈으로 자기 눈썹을 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허물을 잘 알지 못하고 남의 잘못은 잘 봄을 비유한 말이다.
동풍(東風)이 말의 귀를 스쳐 지나간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고 흘려버리는 것을 형용하는 말이다.
기세가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기세가 매우 대단하여 감히 대항할 만한 적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마음 속에서 터득하고 이해하면 손은 저절로 그렇게 따른다는 뜻으로 일솜씨가 몹시 능숙하여 경지에 도달함을 의미한다.
'물러나 90리를 피하다'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여 물러나는 것을 비유한다.
군사들이 손에 쥔 채찍만 던져도 강을 막는다는 말로서 군사가 많거나 군사력이 강대함을 비겨 이른다.
열 번이나 겹겹이 싸서 갈무리한다는 뜻으로 물건을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을 비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