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1호”서 발굴된 문화재 18만점 초과, 中 송나라때의 활발했던 대외무역 과시

2019-08-08 19:56:23 CRI

중국국가문물국은 6일, 베이징에서 중국 송나라때의 침몰선 "남해1호"의 보호발굴 프로젝트 등 고고학의 새로운 성과물을 발표했습니다. 지금까지 "남해1호"침몰선 정리는 단계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며 침몰선에서 18만 여점의 정교한 문화재가 발굴되어 중국 송나라때의 활발했던 대외무역을 과시했습니다. 이는 중국 나아가 전반 동아시아와 동남아의 고대조선 역사(古代造船史)와 도자기역사, 항운역사, 무역역사의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남해1호"는 남송초기 해상에서 실종침몰된 목질의 고대 선박이며 1987년에 광동양강(廣東陽江) 해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2007년에 "남해1호"는 인앙되어 광동해상실크로드 박물관에 안치되었으며 그 후 문화재 부문은 이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발굴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지금까지 선박에 실려있던 화물의 정리 작업은 단계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며 18만 여점의 정교한 문화재가 출토되었습니다. 

손건(孫鍵)국가 문물국 물밑 문화유산보호센터 기술 총 감독은 선박에서 발굴된 도자기는 집중적으로 남송시기 중국의 도자기 대외수출의 활발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선박에 실린 도자기는 주로 동남 연해지역에서 왔으며 이는 당시 중국 동남연해지역의 경제상황과 관계가 있습니다. 당나라 이후 특히 송나라 이후 활발해진 대외무역으로 복건과 절강에 대외무역을 위주로 하는 동남도자기 공장이 탄생했으며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은 모두 대외무역 용으로 그 모양은 외국의 이미지를 모방한 흔적이 확연했습니다." 

손건 총 감독은 또한 "남해1호"선박에 실린 철기의 총 무게는 130톤을 넘었다며 이는 당시 대외무역에서의 철기제품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고 또한 송나라때 석탄화석을 연료로 하는 야금산업 생산량이 거대하고 이미 대외무역에 널리 활용되었으며 중국의 수출화물에서 중요한 품목으로 되었음을 설명한다고 소개했습니다.

고고학 발굴을 통해 "남해1호"의 침몰선의 선체는 선두와 선미가 일부 훼손되었을뿐 보존이 완정하며 지금까지 중국에서 발견된 보존이 가장 잘 된 고대 침몰선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선체의 구조와 모양의 공예로부터 "남해1호"는 중국 고대 원양무역에서 주력 선박인 "복선"(福船)에 속하며 이런 선박은 수밀격창(水密隔艙) 기술을 활용해 안전도가 높고 풍랑에 잘 견디며 선적량이 많아 원양항행에 적합한 등 특점을 갖고 있습니다. 강파(薑波)국가문물국 물밑 문화유산보호센터 고고학 연구소 소장은 "남해1호"의 보호와 발굴은 조선역사의 연구에 있어서 얻기 힘든 견본이라고 말했습니다.

"송나라때의 선박이 현재까지 보존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해선(海船)의 수명은 일반적으로 30년입니다. 만일 바다밑에 침몰되어 진흙에 덮히지 않았다면 아주 빨리 침식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현재까지 보존되었다는 것은 대단합니다. 해당 선박은 "복선" 모양이며 많은 조선공예와 구조상 특징이 이 선박에서 충분히 보여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침몰선 선체의 발굴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1년안에 완성될 전망인데 그때에 또 더욱 많은 고고학 발견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소개에 따르면 "남해1호" 보호발굴 작업은 발굴, 보호, 전시 3위1체의 선진 이념에 따라 과학기술혁신수단을 널리 활용해 국제학술계의 높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송신조(宋新潮) 중국국가문물국 부국장의 소개입니다.

"남해1호"의 발굴은 중국 물밑고고의 역사를 견증했으며 중국의 전반적인 인양, 실험실 고고학, 전반적인 발굴을 망라해 모두 인류 물밑고고학 교과서에 기록할 사례입니다."

이날 또한 호북 수주 조수림 고분(湖北隨州棗樹林墓地)의 고고학 성과에 대해서도 통보했습니다. 소개에 따르면 조수림 고분은 춘추 중, 말기 증국공후 고분(曾國公侯墓地)이며 현재까지 증국(曾國) 국군(國君) 및 부인의 합장묘를 망라한 높은 등급의 고분 54개를 발굴했으며 천여점의 공예가 정교한 청동기와 칠목기 등 부장품이 출토되었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당시 사회생산력 수준과 예악제도(禮樂制度), 계층조직 등 발전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부 청동기에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어 중요한 역사자료 가치를 소유하고 있으며 증국 역사의 연구와 증(曾),주(周)관계사와 증(曾) 초(楚)관계사 및 중화문명의 형성과 발전에 모두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번역/편집:박은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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