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과 문화]석문간(石門涧)

2019-01-10 18:15:32 CRI

노산(廬山) 서쪽 기슭에 위치한 석문간(石門涧)은 노산 서대문이라고 불린다. 석문간은 천지산(天池山)과 철선봉(鐵船峰)이 마주 서서 산문을 이루고 산속에는 폭포가 드리워 얻은 이름이다. 석문간 폭포는 노산의 많은 폭포 중 제일 먼저 사서에 기재됐다.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가 깊은 골짜기에 고여 호수를 이루었고 많은 기암괴석이 수면 위에 드러나 있으며 가장 크고 평탄한 반석 위에는 최대 10명이 앉을 수 있다. 그리고 반석에는 “석문간” 세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석문간 지명에는 오래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먼 옛날, 노산 서쪽 기슭 한 마을에 춘생이라는 청년이 살았는데 계모의 구박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폭설이 내리고 눈바람이 매서운 어느 겨울날 계모는 춘생 더러 맨발에 짚신을 신고 노산에 올라 나무를 해오라며 밖으로 쫓아냈다. 춘생은 어쩔 수 없이 밧줄과 칼을 들고 눈바람을 가르며 노산으로 향했다.
 
춘생이 노산 산자락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종달새 울음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고개를 들어 보니 종달새가 춘생의 머리 위에서 맴돌더니 가까이 날아들어 마치 길을 안내하려는 듯 했다.
 
춘생은 생각했다.
 
“혹시 산속의 신령님이 나를 가엽게 여겨 보내준 길잡이 새인가?”  
 
춘생은 기뻐하며 종달새의 은은한 노래 소리를 따라 노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춘생이 산 중턱에 올랐을 때 용머리 지팡이를 짚은 한 노인이 서 있었다. 백발홍안의 노인은 혈색이 좋고 건강해 보였다. 노인은 춘생의 남루한 옷차림을 보더니 물었다.
 
“청년, 이 엄동설한에 옷이 얇구만! 여기까지 어인 일인고? ”   
 
춘생이 대답했다.
 
“계모가 땔감을 해오라 해서 오게 됐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저녁밥을 주지 않겠다 했습니다. 하지만 폭설이 내려서 땔감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노인은 춘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기 절벽 위에 오르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노인은 등에 업은 조롱박에서 길이가 두 척이 되는 황금색 수세미를 꺼내 춘생에게 건네주고 사라졌다.
 
이때 종달새가 다시 춘생에게 날아오더니 노래를 부르며 한 절벽에 날아 올랐다. 춘생은 종달새를 따라 절벽 끝에 올랐다. 고개를 들어 보니 하늘을 찌르는 듯한 기이한 산봉우리가 눈앞에 펼쳐졌고 발 아래는 아찔한 벼랑이었다. 춘생은 겁에 질려 한발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때 산 중턱에서 만난 노인이 다시 춘생 앞에 나타났다. 춘생은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노인을 와락 끌어안았다.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겁먹지 말게. 뒤를 돌아보게나.”
 
춘생이 천천히 머리를 돌려 보니 석벽 사이에 작은 틈이 보였으나 사람이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때 노인이 말했다.
 
“빨리 수세미를 꺼내 입김을 불게! 지금이 바로 석문을 열 시간이라네!”
 
춘생은 즉시 수세미를 꺼내 입김을 불었다. 순간 손에 있던 수세미가 눈부신 빛을 발산하더니 황금 열쇠로 변했다. 춘생은 기뻐하며 황금 열쇠로 석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산같이 쌓인 눈부신 금은 재물이 보였다. 춘생은 그 많은 재물을 보고도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조금만 챙겨 나왔다. 춘생이 나오자 석문이 바로 닫혔다.
 
재물을 얻은 춘생은 더는 계모의 구박을 받지 않게 됐다. 그는 집을 떠나 밭은 장만하고 농구를 사서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계모는 춘생이 잘 사는 모습을 보고 심술이 났다. 계모는 춘생을 문안하고 싶다는 핑게로 춘생의 집을 찾았다. 그는 평소 어질던 춘생이 어떻게 재물을 얻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계모는 춘생이 재물을 얻은 과정을 듣더니 바로 집에 돌아와 큰 광주리를 메고 산에 올라 석문에 까지 이르렀다. 석문이 굳게 닫혀있는 것을 보고 계모는 그 앞에 무릎을 꿇어 빌기 시작했다.
 
“석문아,석문아! 내가 들어갈 수 있게 빨리 문이 열리거라! ”
 
이때 “끼직” 소리와 함께 석문이 진짜 열렸다. 계모는 너무 기뻐 서둘러 안으로 달려 들어가 광주리에 재물을 끊임없이 주어 담았다. 그가 무거운 광주리를 끌어 당기며 나가려고 할 때 석문이 굳게 닫혀버렸다. 탐욕스럽고 심보가 고약한 계모는 영원히 석문 안에 갇혔다.
 
춘생은 계모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계모를 찾아 산에 올랐다. 하지만 석벽은 두 개로 갈라져 있었고 그 사이에는 깊은 골짜기가 생겨 있었다. 그 후 사람들은 이 곳을 석문 골짜기라는 뜻으로 석문간이라고 불렀다. 
 
번역/편집: 조옥단
korean@cri.com.cn


달력

뉴스:
국내 국제
문화:
뉴스 성구이야기 역사인물
중국어교실:
매일중국어 실용중국어회화
경제:
뉴스 인물
관광:
중국관광 관광앨범 먹거리
포토:
국제 국내
오디오
영상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