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과 문화]향로초(香爐礁)

2019-01-10 18:11:54 CRI

향로초는 대련 바닷가에 있는 높이가 15m되는 초석으로 그 모양이 향로를 닮았다 하여 얻어진 이름이다. 1973년에 조선소가 선거를 건설하면서 향로초를 폭파시킨 관계로 지금은 그 이름만 남았다.
 
대련 서강구(西崗區) 향로초 일대는 원래 허름한 판자촌이었으나 지금은 고층 빌딩이 수풀처럼 들어선 현대적인 모습이다. 그렇다면 향로초라는 지명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까?
 
먼 옛날, 대련 청니와교(靑泥窪橋) 인근 지역은 해변가 모래사장으로 주민이 없었다. 하루는 바다에서 큰 바람이 불더니 거센 파도가 하늘까지 솟구쳐 올랐다. 단동(丹東)으로 향하던 한 여객선이 큰 바람에 향로초에 밀려왔다. 그리고 이튿날 오후 바람이 멈추자 사람들이 배에서 내려와 소라도 줍고 게도 잡았다. 그 중에는 이림(李林)이라 하는 청년이 있었는데 배에서 내려 산책하고 있었다. 그가 서쪽 해변가에 이르렀을 때 큰 거북이 초석 위에 엎드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거북이 바다에 돌아갈 수 없게 된 줄 알고 다가가서 도와주려 했다. 그는 거북의 등딱지를 힘껏 들었는데 거북은 그대로이고 본인만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청년이 다시 다가가 자세히 보니 죽은 거북이었다. 그리고 등딱지가 청년이 들어올린 탓으로 떨어져 나갔다.
 
이때 청년은 거북의 등딱지 안에서 반짝이는 구슬을 발견했다. 그는 호기심에 구슬을 하나하나 칼로 도려내 그것을 천에 잘 싸서 간직했다.
 
청년은 다시 배를 타고 단동에 도착해 한 여인숙에 묵었다. 그는 잠을 자려고 옷을 벗다가 그만 허리춤에 숨겼던 구슬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 광경을 여인숙 점원이 엿보고 여인숙 주인한테 일렀다. 견식이 넓은 주인은 그 말을 듣고 청년을 찾아가 인사를 나누면서 말했다.
 
“선생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작은 여인숙이라 불편하지 않으신지 양해를 구합니다.”
 
청년은 주인의 친절한 태도에 의아해하며 말했다.
 
“저는 이림이라고 합니다. 일거리를 찾으려고 산동에서 이곳까지 왔습니다. 주인님이 이렇게 친절히 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주인이 그 말을 듣더니 즉시 점원에게 총각의 짐을 고급 객실로 옮기게 하고 귀빈으로 모실 뿐만 아니라 모든 비용을 면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청년은 더욱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틀이 지나자 청년은 주인에게 일반 객실로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주인은 승낙하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진 청년이 주인에게 말했다.
 
“주인님, 저를 이렇게 환대해 주시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가난한 집 자식인지라 빨리 나가서 일자리를 구해야지 아니면 입에 풀칠 하기도 힘듭니다. 제발 저를 일반 객실로 옮겨 주십시오.”
 
이에 주인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비록 작은 여인숙을 경영하고 있지만 선생을 먹여 살릴 형편은 된답니다. 염려치 말고 편히 계십시오.”
 
청년은 어쩔 수 없이 여인숙에서 생활하게 됐다.
 
하루는 주인이 아내와 함께 청년을 찾아와 말했다.
 
“선생,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결혼은 하셨는지요?”
 
이에 청년은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는 형편이 어려워 항상 다음 끼니를 걱정하는 상황이라 사실 빨리 돈을 벌어서 색시를 맞이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
 
그 말을 듣고 주인 부부는 기뻐하며 말했다.
 
“잘 됐군요. 저희 집에 올해 18세 되는 딸이 있습니다. 이선생한테 시집 보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 말에 청년은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바로 동의했다.
 
여인숙 주인은 즉시 길일을 택해 혼례를 올렸다. 결혼식이 끝나서야 장인은 청년에게 간직하고 있는 구슬이 큰 보물이라고 알려줬다. 시간이 흘러 장인은 여인숙을 이림에게 맡기고 한 가족이 행복하게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하루 여인숙은 큰 화재로 폐허가 돼버렸다. 온 가족은 길거리에 나앉게 됐고 어렵게 생활을 유지했다. 이때 장인이 말했다.
 
“가지고 있던 구슬은 어찌 하였는가? 구슬을 사용할 때가 왔네.”
 
큰 불이 났을 때 다급한 상황에서도 이림은 구슬 주머니를 잘 챙겨 나왔다. 이림은 단동의 모든 금은방을 돌아다니며 구슬을 팔았다. 하지만 구슬을 전부 사들이는 곳은 한곳도 없었고 최종적으로 5개만 팔렸다. 구슬 5개라도 은 3천냥이 되니 이림은 다시 가게를 열어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머지 구슬도 베이징성에서 온 거상이 사들여 이림은 현지에서 유명한 갑부가 됐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이림은 옛날 구슬을 얻었던 그 곳을 잊지 못했다. 그는 점원들을 거느리고 대련을 다시 찾았는데 옛날 초석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초석에는 큰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이림은 그 곳에 제사 음식을 올리고 향불을 피워 신령님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 후 그는 해마다 구슬을 얻은 날에 이 곳을 찾아와 제사를 지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다에서 작업하는 어부들이 이곳에서 향불이 피어 오르는 것을 발견하고 신통한 초석이라 여겼다. 그 소문이 널리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아 향불을 피우고 신령에 소원을 빌었다. 그 후 사람들은 이 초석을 향로초라 불렀다.       

번역/편집: 조옥단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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