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과 문화]의오(義烏)

2018-12-20 17:41:21 CRI

절강성(浙江省) 중부에 위치한 의오(義烏)시는 남쪽으로 광동(廣東)과 복건(福建), 서쪽으로 장강(長江) 중심지역에 이르고 동쪽으로 중국 최대 도시 상해(上海)와 인접했으며 태평양을 마주한 황금 통로이다. 현재 의오는 세계적으로 최대의 일상 잡화상품 집산지로 유네스코와 세계은행 등 국제 권위기구에 의해 세계 최대 시장으로 인정된다.
 
전한데 의하면 진나라 시기 동해에서 서쪽으로 150km 되는 우월(於越) 경내에는 비옥한 당이 있었는데 기후가 알맞고 오곡이 풍성했다. 하지만 지주의 잔혹한 착취로 많은 백성들이 땅을 잃고 노예가 되거나 걸인이 되었다.
 
산동에서 피난 온 안(顔)씨 부자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안봉(顔鳳), 아들은 안오(顔烏)라 불렀다. 부자는 처음에 지주네 집에서 일했는데 안봉이 나이가 많고 건강이 좋지 않자 지주는 바로 집에서 쫓아냈다. 그 후로 부자는 거지가 되어 길거리에 나앉았다. 항상 굶주린 부자는 어지러워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고 특히 연로한 아버지는 큰 병을 앓고 있었다. 효자 안오는 먹을 것이 생기면 아버지에게 먼저 대접하며 겨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하루는 안오가 구걸하다가 작은 동굴을 발견했다. 동굴은 크지 않았으나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했다. 안오는 기뻐하며 동굴을 정리하고 깨끗하고 큰 돌덩이를 가져다 누울 수 있는 침대도 만들고 앉을 수 있는 걸상도 만들었다. 이렇게 부자는 동굴에서 생활하게 됐다.
 
여름이 되자 동굴에는 모기가 점점 많아졌다. 착한 아들은 매일 저녁때면 먼저 동굴 속에 들어와 윗옷을 벗고 자청해서 모기 밥이 됐다. 그리고 배부른 모기들이 사라진 후에 다시 아버지를 동굴에 모셨다. 하루는 아버지가 물었다.
 
“아들, 왜 얼굴에 이렇게 많은 종기가 생겼느냐?”
 
이에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그래요. 제 얼굴은 혈색이 좋아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아들의 효심은 동굴밖에 둥지를 튼 까마귀들을 감동시켰다. 까마귀는 매일 동굴 속 모기를 모조리 먹어 버려 부자가 다시 고생하지 않게 도왔다. 아들은 고마운 마음에 밖에 나가서 구걸해 온 음식을 조금 남겼다가 까마귀들한테 나눠줬다.
 
하루는 날이 금방 밝았는데 동굴 속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전해졌다. 아버지가 돌아간 것이었다. 아들은 아버지를 끌어 안고 구슬프게 울었다. 까마귀들도 슬프게 울었다. 그리고 까마귀들이 둥지를 떠나 각자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만 마리의 까마귀 떼가 목에 흰색 화환을 달고 날아들어 부자의 주위를 맴돌며 애도했다. 그리고 다시 서북 방향으로 날아가더니 부리로 흙을 물어왔다. 끊임없이 흙을 나르던 까마귀들은 부리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저녁 때가 되자 높고 큰 무덤이 만들어 졌다. 나중에 아들이 죽은 후에도 까마귀들은 같은 방법으로 아버지 무덤 옆에 아들을 묻어줬다.
 
그 후로 사람들은 부상도 마다하고 무덤을 만들어 안씨 부자를 묻어 준 정의로운 까마귀를 기념하기 위해 이 지역 일대를 오상(烏傷)이라 불렀다. 진시황이 강남을 평정한 후 여기에 현을 설치하고 “오상”이라 이름했으며 기원 624년에 이르러 “의오”라 개명했다.    

번역/편집: 조옥단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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