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网络文化)[지명과 문화]베이징

2018-09-04 16:12:59 CRI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이다. 3000여년의 유구한 역사와 850여년의 도읍 건설 역사를 갖고 있는 베이징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 도시이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은 왜 이곳에 도읍을 세웠을까? 여기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명나라 시기 연왕(燕王) 주체(朱棣)는 북방에 도읍을 건설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어디에 세워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는 천문과 지리에 능통한 대신 류백온을 불러 함께 토론했다.
 
류백온은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도읍의 위치를 정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대장군 서달(徐達)에게 맡겨주십시오.”
 
그 말에 연왕은 서달을 급히 불러들여 류백온의 배치에 따르도록 명했다. 류백온은 서달에게 말했다.
 
“대장군, 최선을 다해 북쪽으로 활을 쏘아 주십시오. 화살이 떨어지는 곳에 도읍을 건설할 것입니다.”
 
서달이 명을 받들어 궁전 밖에 서서 활을 힘껏 당겨 북쪽으로 쏘았다. 류백온은 급히 사람들을 이끌어 배에 탔다. 그리고 대운하를 따라 화살을 쫓았다.
 
서달 장군은 과연 용맹하고 위엄이 대단했다. 그가 쏜 화살은 지금의 베이징 도심에서 남쪽으로 20여 킬로미터 떨어진 남원(南苑)에 떨어졌다. 당시 남원에는 8대 갑부가 살았는데 공중에서 갑자기 화살이 떨어지는 바람에 불길한 징조라며 몹시 불안해 했다. 그러던 중 화살이 떨어진 곳에 연왕이 도읍을 건설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더 초조해했다. 이렇게 되면 자신들의 집채와 토지를 전부 연왕이 차지하게 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갑부들은 모여서 토론했다. 최종적으로 그들은 몰래 그 화살을 다른 곳에 다시 쏘았다. 이렇게 화살은 더 북쪽으로 날아가 지금의 후문교(後門橋) 부근에 떨어졌다. 전한데 의하면 후문교 아래에는 석패가 있는데 거기에는 “북경성”이라 적혀 있다고 한다.
 
류백온은 신통력으로 화살이 이미 남원에 떨어진 것을 감지했다. 그는 사람들을 이끌어 남원에 도착했고 그 곳 갑부들을 만나 화살을 내놓으라고 말했다.
 
류백온을 속이기 힘들다는 것을 안 갑부들은 이렇게 간청했다.
“이곳에서 성을 쌓지만 않는다면 어떤 요구든 들어 드리겠습니다.”
 
류백온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성을 쌓는 자금을 자네들이 부담해야 겠소.”
 
이에 갑부들은 다시 모여 토론했다. 그들은 모두의 재력을 합친다면 성을 쌓는 것 쯤이야 큰 일이 아니라 판단하고 류백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류백온은 먼저 서직문(西直門) 성루를 건설했다. 그런데 성루가 건설되기도 전에 갑부들이 파산에 이르렀다. 자금이 부족하니 성을 쌓을 수 없었던 류백온은 고민에 빠졌다. 한참 생각하던 류백온은 부하를 시켜 심만삼(沈万三)이라는 사람을 찾게 했다. 심만삼은 유명한 인물이다. “살아 있는 재물신”이라 불리우는 심만삼은 돈이 많은 부자였지만 항상 남루한 옷 차림으로 길거리에서 거지 행세를 했다. 하지만 희한한 것은 심만삼은 호되게 맞으면 급한 나머지 아무 곳이나 가리키는데 그 곳을 파보면 반드시 금은보화가 넘쳤다. 그것도 세게 맞을수록 보물이 더 많이 나왔다. 그러나 그를 때릴 사람이 많지 않았다. 가족들은 이런 모진 짓을 할 수 없었고 평소 백성들도 이유 없이 아무나 때리지 않았다.
 
류백온은 심만삼을 불러 지금의 십찰해에 데리고 가서 말했다.
“재물신님, 연왕이 북경성을 쌓는데 많은 자금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위해 자금을 찾아 주십시오.”
 
심만삼은 그 말을 듣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재물신이 웬말입니까? 저 같은 거지한테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이에 류백온이 눈을 부릅뜨고 책상을 탁 치며 말했다.
 
“당신이 재물신이 아니라면 요물인게야! 세간에 유언비어를 퍼뜨려 백성들을 미혹시켰다! 이봐라, 끌어내어 호되게 내리 쳐라!”
그러자 체구가 웅장한 몇몇 장사들이 몰려 오더니 심만삼을 패기 시작했다.
 
그러자 심만삼이 급기야 발을 구르더니 말했다.
“여기에 보물이 있소! 한번 파 보시오!”
 
류백온은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땅을 파기 시작했다. 며칠 뒤, 진짜 10가마가 되는 눈부신 은이 발견됐다. 한 가마가 48만냥이 되니 10가마면 480만냥에 달했다. 은이 묻었던 이곳에는 큰 구멍이 생겼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 구멍에는 물이 가득 고여 사람들은 이곳을 “샙객해(十客海)”라 불렀다. 십객해는 오늘날의 십찰해(十刹海)이다.

 
류백온은 이렇게 심만삼을 호되게 때린 후 파낸 돈으로 베이징성을 건설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번역/편집: 조옥단
korean@cri.com.cn


달력

뉴스:
국내 국제
문화:
뉴스 성구이야기 역사인물
중국어교실:
매일중국어 실용중국어회화
경제:
뉴스 인물
관광:
중국관광 관광앨범 먹거리
포토:
국제 국내
오디오
영상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