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과 문화] 석봉고사(石峰古寺)

2018-08-28 17:00:17 CRI

호남성(湖南省) 주주시(株洲市) 북부에 위치한 석봉구(石峰區)는 주주의 공업, 과학기술 및 교통중심이다. 북쪽으로는 장사(長沙)와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상담(湘潭)과 잇닿아 있다. 석봉구는 장사, 주주, 상담지역의 황금 삼각지대 최전방에 위치해 있다. 석봉사(石峰寺)는 주주 북부의 석봉산(石峰山)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지금까지도 담의 터가 남아있다. 지금 이곳에 조성된 석봉공원은 주주의 유명한 관광지이다.
    
주주 북부의 석봉산 자락에는 한 단락의 옛 사찰담벽이 남아있는데 이곳이 바로 석봉고사의 옛터이다. 전한데 의하면 석봉고사는 예전에 강아지 머리를 모신다 하여 구두묘(狗頭廟)라고 불렀다고 한다.. 구두묘의 유래에 대해 현지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의 어느 봄 날, 장청(張靑)이라는 사람이 강에서 뗏목을 띄우다가 홍수를 만났다. 물에 빠진 장청은 큰 나무를 꽉 잡아 물 위에서 떠다니다 석봉산 산자락 강변에 기여올라 갔다. 그리고 그의 강아지도 함께 강변으로 올라왔다. 강변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숲이 무성했으며 인적이 없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장청은 추운데다 배도 고파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녔다. 그는 강아지와 함께 산중턱으로 올라가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동굴로 들어간 그는 자리에 눕자 마자 고열로 일어나지 못했다.

 장청은 속으로 원망했다.
 
“하늘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가. 강에서 겨우 살아나니 이 동굴에서 굶어 죽고 병들어 죽게 됐군.”

그가 절망해 있을 때 강아지가 밥 한 사발을 물고 돌아왔다. 이튿날, 강아지는 또 밥 한 사발을 물어왔다.

장청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깊은 산속에 인적도 없는 곳인데 어디에서 밥을 물어 왔을까?”

 그는 밖으로 나가 사람을 찾아보고 싶었지만 온 몸에 기력이 없어 일어서지도 못했다.

 알고보니 이 때가 청명절이라 사람들이 음식을 들고 성묘하러 왔던 것이다. 훈련을 받은 강아지는 주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여 강아지는 자기가 배불리 먹은 후 주인한테 밥을 물어왔다.
 
 한편 장청과 함께 뗏목을 띄우던 머슴이 물에 빠진 후 구조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서 상황을 알렸다.
 
“주인님께서 살아계신다면 반드시 주주의 강변에 있을테니 어서 사람들을 불러 찾읍시다!”

하여 장청네 집에서 사람들을 불러 주주 일대를 찾다가 동굴안에서 장청을 찾아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강아지는 먹이를 찾으러 나간 후라 함께 돌아오지 못했다.

이듬해, 장청은 또 뗏목을 띄우며 석봉산을 지나면서 그 강아지가 있는지 확인하러 석봉산을 올랐다. 장청은 동굴을 찾았지만 그 강아지를 보지 못했다. 순간 그는 구석에서  강아지의 뼈를 발견했다. 강아지는 이미 죽은 것이다.  은혜를 갚기 위해 장청은 강변에 사찰을 지어 그 사찰에 강아지 머리를 모셨다. 하여 현지인들은 이곳을 강아지 머리 사찰이라는 의미로 “구두묘” 라고 했다.

석봉산을 관할하는 상담현 현령한테 청지기가 있었는데 그가 현령에게 자주 계책을 내준다 하여  사람들은 그를 “구두군사(狗頭軍師)”라 불렀다. 하여 그는 “구두묘” 가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하여 사찰 이름을 “충견묘” 로 고쳤다. 훗날 사람들은 석봉산이라는 지역이름을 빌어 “구두묘” 를 석봉사로 고쳤다. 청나라 말에 현지인들이 사찰을 다시 수선하면서 강아지 머리 대신 관세음, 관공(關公), 십팔나한(羅漢)을 모셨다. 나중에 석봉사는 역사가 유구했기 때문에 “석봉고사”로 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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