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과 문화]목양성(牧羊城)

2018-07-16 11:50:41 CRI

요녕성(遼寧省) 여순구(旅順口) 노철산(老鐵山) 서북기슭 유가촌(劉家村) 동쪽 구릉에 위치한 목양성(牧羊城)은 바다와 약 500미터 떨어져 있다. 산세를 따라 건설된 이 성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수재 위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방어에 유리하고 공격하기 힘들며 수로와 육로 교통이 편리했다. 하여 목양성은 원래 산동(山東)반도와 요동(遼東)반도 사이의 중요한 교통 허브였고 당시 중요한 해안방어 성곽이었다.
 
요녕성 여순구 철산진(鐵山鎭) 조가촌(刁家村) 서남쪽, 유가촌 동남쪽 구릉에는 토성이 있다. 성곽의 동서 성벽은 모두 3미터가 넘는데 남북 성벽은 이미 무너졌다. 전한데 의하면 예전에는 성문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여순구에서 유명한 목양성이다. 목양성 지명의 유래에 관해서 재밌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당나라의 한 장군이 황제의 명을 받고 군사를 이끌어 요동 지역으로 출정했다고 한다. 군사는 도읍에서 출발해 밤낮없이 몇 개월간 강행군 끝에 산동 봉래(蓬萊)에 이르렀다. 하지만 일망무제한 바다가 앞길을 가로 막아 한달간 이곳에 발이 묶이게 된 군사들은 군량이 다 떨어지게 됐다. 장군은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기력이 떨어지는 병사들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어느 날 밤, 장군이 잠을 자는데 꿈에 흰 수염의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장군, 걱정하지 마세요. 봉래성 밖에는 선인동(仙人洞)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해결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이튿날 아침 장군은 즉시 부하를 거느리고 선인동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봉래산을 따라 반나절 찾아 다니다가 절벽에서 동굴을 발견했다. 이 동굴은 희한하게도 햇빛이 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동굴 안은 대낮처럼 밝았다. 장군은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큰 돌이 앞길을 가로 막았다. 장군은 혼신의 힘을 다해 돌을 한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얼마 걷지 않아 눈앞에 강이 나타났다. 강은 깊고 넓었으며 물은 깨끗하고 맑았다. 장군은 강을 어떻게 건널까 고민하고 있는 중에 강 맞은편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그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강을 어떻게 건넜나요?”
 
이에 할머니는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장군에게 빨래판을 던져 줬다. 그리고 장군더러 그 빨래판을 타고 강을 건너라고 말해줬다. 장군은 할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빨래판에 올라섰는데 순식간에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이때 할머니가 말했다.
 
“강을 건너는 것이나 바다를 건너는 것이나 똑같다네. 대장군, 이젠 바다를 어떻게 건너야 할지 알겠습니까? ”
 
장군은 잠깐 사색에 잠겨 있다가 뗏목을 이용해 바다를 건널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리고 할머니는 책자 하나를 건네며 어려움이 닥칠 때 이 책을 펼쳐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할머니는 또 활과 은 화살 9개를 건네주며 말했다.
 
“요괴를 만나면 이 활과 화살로 대적하십시오.”
 
장군은 이 할머니가 신선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군사를 주둔할 적합한 곳을 물으려고 하는 순간 할머니는 “때가 되면 누군가 알려줄 것"라는 말만 남기고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장군은 즉시 군사 주둔지로 다시 돌아와 병사들에게 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들고 10리 되는 바닷가를 전부 뗏목으로 뒤덮을 것을 명했다. 그리고 장군은 날씨 좋은 날을 골라 병사들과 함께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날씨가 급변하면서 바다에 풍랑이 일기 시작했다. 큰 파도가 연이어 몰려 오면서 뗏목을 내리 쳤다. 바다 위에 위태롭게 떠있는 뗏목은 파도에 밀려 흔들거렸고 바다에서 훈련이 되지 않은 병사들은 뱃멀미로 하나 둘 씩 쓰러졌다.
 
장군은 긴급한 상황에서 할머니가 전해준 책자가 생각났다. 그는 즉시 책을 펼쳐 보았는데 거기에는 “대해여경(大海如鏡,거울같이 평온한 바다)”이라는 네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큰 소리로 “대해여경”을 외쳤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방금 전까지 크게 일렁이던 바다가 즉시 안정을 되찾고 수면이 거울 마냥 평온해졌다. 하여 장군은 병사들을 이끌어 불철주야로 뗏목을 저어 끝내 바다를 건넜다.
 
군사는 지금의 윤가촌(尹家村) 대오애(大烏崖)에서 상륙했다. 장군은 군사를 이끌고 행군을 계속했다. 장군이 밀림 깊은 곳에 이르렀을 때 타고 있는 말이 앞으로 나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울부짖었다. 다시 살펴보니 장군의 전포가 갈구리 모양으로 된 대추나무 가시에 걸린 것이었다. 장군은 다시 할머니가 준 책을 펼쳐 큰 소리로 외쳤다.
 
“대추나무 가시 모두 위로!”
 
그 소리에 그곳 대추나무 가시가 전부 위로 향하고 전포가 다시 걸리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이곳 대추나무 가시는 아래로 드리운 갈구리 모양이 없다고 한다.
 
행군이 꽤 오래 지속된 가운데 현지인들에 의해 신의 나무라 불리우는 고목이 군사들의 앞길을 막았다.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자란 이 고목은 큰 우산마냥 산비탈에 서 있었다. 장군이 고목의 웅장한 자태를 자세히 감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거대한 구렁이 한마리가 시뻘건 입을 벌리며 공격해왔다. 장군은 즉시 할머니가 준 활과 화살을 꺼내 구렁이를 향해 9발을 쏘았다. 화살에 맞은 구렁이는 온 몸에 구멍이 뚫렸고 비명을 지르며 흰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장군은 몇만명의 대군을 이끌어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면서 고생 끝에 한 평탄한 초지에 이르게 됐다. 초지에는 양떼가 유유히 풀을 뜯고 있었고 그 옆에는 양치기 노인이 앉아 있었다. 순간 장군은 할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양치기 노인한테 다가가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물었다.
 
“어르신, 어디에 성을 쌓는게 좋을까요?”
 
양치기 노인이 말했다.
 
“제가 앉은 바로 이 자리에 성을 쌓을 수 있습니다.”
 
노인은 이 말을 남기고 양떼와 함께 서서히 떠나갔다. 장군은 신선의 가르침을 받고 즉시 병사들을 명해 그곳에 주둔해 성을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사를 정비하고 계속 동쪽으로 출정할 준비를 단단히 했다. 이 성은 양치기 노인의 제시로 건설됐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이 성을 “목양성” 즉 양치기 성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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