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과 문화] 용자간(龍子涧)

2018-05-18 15:37:24 CRI

산동성(山東省) 초원시(招遠市)에 위치한 용자간(龍子涧)은 첩첩 산 중 봉우리가 기이하며 풍경이 아름답다. 초원은 황금 매장량이 높으며 중국 최대 금광을 보유하고 있고 중국에서 최대의 황금 산량을 자랑해 “중국의 황금 도시”로 불리운다.
 
초원 북부에는 산이 많은데 그 중에 “운탄정(雲呑頂)”이라는 산이 있다. 이 산은 하늘을 찌르는 듯 높은 산봉우리가 특징이고 산세가 가파르다. 산자락에는 10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 있다. 마을은 아담하지만 그 이름은 굉장했다. 바로 용의 아들이 사는 골짜기라는 뜻의 “용자간”이다. 이 마을 지명의 유래에 관해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먼 옛날, 동해 용왕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이름이 수운(水雲)이었다. 18세가 된 수운은 결혼할 나이가 다 됐으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하루는 수운이 방에서 너무 답답해 고민하다가 인간세상에 내려가 보기로 했다. 수운은 용왕 몰래 용궁을 빠져나와 인간세상에서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경치와 생기 넘치는 마을들을 돌아보면서 더없이 신기하고 즐거웠다.
 
인간 세상의 아름다움은 수운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운탄정에 이른 수운은 이곳의 기암괴봉과 푸른 숲, 그리고 운무가 몽롱한 비경에 흠뻑 빠졌다. 이때 그는 산속에서 인물이 준수한 한 청년이 나무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수운은 그 청년에게 첫 눈에 반했다. 그녀는 당당하게 청년에게 다가가 물었다.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운탄정이 어디죠?”
 
청년은 고개를 들어 처녀의 얼굴을 쳐다 봤는데 아름다운 미모에 놀라면서 얼굴이 빨개졌다.
 
“이곳이 바로 운탄정입니다. 실례지만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는지요?”
 
이에 수운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어려서 부모를 잃은 고아인데 이곳에 사는 친척을 찾아 왔습니다. 하지만 길을 잃어 친척을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젠 집에 돌아가는 길마저 잃게 됐습니다.”
 
착한 청년은 처녀의 말을 듣고 걱정됐다.
 
“아가씨가 괜찮다면 저희 집에서 며칠 묵어도 됩니다.”
 
그 말에 수운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감사합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
 
청년이 말했다.

“저는 산주(山柱)입니다. 산자락 마을에 살고 있는 나무꾼입니다.”
 
당돌한 성격의 수운은 청년의 집에 들어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당신을 사모합니다. 당신도 제가 싫지 않다면 우리 결혼합시다.”
 
그 말에 청년은 당황해 하며 말했다.
 
“저는 가난한 나무꾼입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처녀를 넘보겠습니까.”
 
이에 수운이 말했다.

“진심으로 저를 위해주시면 더 이상 바랄게 없습니다. 둘이서 열심히 살다 보면 굶어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고 아이 이름을 운생(雲生)이라 지었다. 세 식구는 넉넉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행복도 잠깐 용왕이 딸의 행방을 찾아 다니다가 인간세상에서 평범한 사람과 결혼해 아들까지 낳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하를 보내 수운을 잡아 들이라고 명했다.
 
어느 하루, 부부가 아이를 보살피며 일상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용궁 부하들이 나타나 수운을 데려갔다. 남편과 아이를 두고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수운은 아이의 이름을 연속 부르며 통곡했다.
 
수운이 잡혀 간 후 산주는 비통한 나머지 목숨을 거두게 됐다. 그리고 겨우 한달 밖에 안된 아들 운생만 남겨 졌다.불쌍한 아이는 배가 고파 울기 시작했으며 그 구슬픈 울음 소리는 새와 짐승을 감동 시켰다. 매일 저녁 암 호랑이 한마리가 나타나 아이에게 젖을 먹였고 하늘에서 날아 다니는 독수리 한 마리가 아이를 보살피며 바람과 비를 막아줬다.
 
이렇게 독수리와 호랑이의 보살핌으로 운생은 잘 자랄 수 있었다.총명한 운생은 7세에 시를 읊고 10세에 문장을 썼다. 사람들은 운생을 신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아이라고 말했다. 18세가 되던 해에 운생은 장원 급제하여 황궁에 들어가게 됐다. 사람들은 또 운생은 “용의 아들이고 호랑이와 독수리가 키운 아이”이기 때문에 반드시  재난도 복으로 돌리고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그 말을 전해 들은 황제는 운생을 더 중용했고 그는 높은 관직의 관리가 됐다.
 
그리고 몇해가 지나 운생은 관직을 사임하고 운탄정에 돌아왔다. 사람들은 그에게 왜 높은 관직을 버리고 이곳에 돌아왔냐고 의아해 하며 물었다.
 
이에 운생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높은 관직에 있으면 다 좋은 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서로 다투고 속고 속이며 피곤하게 사는 것 보다 이곳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게 더 좋습니다.”
 
이렇게 운생은 매일 산속을 거닐며 새와 동물들과 어울리고 즐겁게 살아갔다.
 
전한데 의하면 운생은 100세가 넘게 건강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 후 관직을 그만 둔 관리들이 이곳을 찾아 은둔했는데 점차 마을이 형성됐고 사람들은 이 곳을 “용자간”이라 불렀다.
 
번역/편집: 조옥단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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