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과 문화] 신필봉(神筆峰)

2017-10-03 16:34:52 CRI

신필봉은 베이징 연경(延慶) 용경협(龍慶峽) 풍경구 내에 있는 관광명소로 지명에는 오래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진나라시기 왕차중(王次仲)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박식하고 재능이 있었으나 벼슬 욕심이 없었던 그는 거용산(居庸山)에 은둔해 있었다. 서예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예서(隸書)를 창조해 사용했는데 예전에 사용하던 서체에 비해 많이 간편했다. 왕차중의 최대의 목표는 자신이 창조한 서체를 널리 보급하는 일이었다.

당시 진시황이 문자 통일을 추진하면서 왕차중이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고 무척 기뻐하며 조정의 관원 정막(程邈)을 파견해 왕차중을 요청했다.

정막은 거용산에 있는 왕차중의 초가집을 찾아가 보니 왕차중이 농사를 짓고 있었다. 왕차중은 손님이 들어오자 무슨 영문으로 찾아왔는지 물었다.

이에 정막은 말했다.

'나는 조정에서 왔소. 당신이 왕차중이요?'

하여 왕차중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정막은 '잘됐소. 당신을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모르오. ' 라며 기뻐했다.

왕차중은 정막을 집안으로 모셔 이야기를 나누면서 진시황의 부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왕차중은 진시황이 잔인한 임금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완곡하게 정막의 요청을 거절했다.

'소인은 평범한 백성에 불과하며 배움이 모자라니 어찌 감히 조정에 발을 들이겠나이까?'

정막은 어쩔수 없이 돌아가서 진시황에게 아룄다. 문자 통일이 시급했던 진시황은 다시 정막을 보내 왕차중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거절했다. 그리고 세번째 부름에도 거절했다. 그러자 진시황이 대노했다. 진시황은 자신의 요청을 세번이나 거절한 왕차중을 함양(咸陽)에 있는 감옥에 가두었다.

왕차중은 감옥에서도 서예를 멈추지 않았고 옥중의 범인들도 그의 서체에 감탄했다. 사람들은 그가 조정의 부름을 거절한 죄로 감옥에 갖혔다는 사실을 알고 그 용기에 더 탄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막도 감옥에 갖히게 됐으며 왕차중과 같은 방에 들어왔다. 감옥에서 정막은 억울함을 토로하면서 왕차중은 용기있는 청년이라며 벼슬을 거절한데 대해 탄복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왕차중은 같은 처지의 정막과 가까워 졌고 정막에게 자신이 발명한 서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정막은 열심히 서체를 익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서의 필법을 장악했다.

그러던 어느날 정막은 갑자기 감옥에서 풀려났고 이틀뒤 진시황은 왕차중을 사형에 처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제야 왕차중은 깨달았다. 정막은 서체를 익히기 위해 왕차중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것이었다.

왕차중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수차에 올라탔다. 죄수차가 길을 가던 도중에 갑자기 왕차중이 큰 새로 변신했으며 죄수차를 탈출해 날개를 펼쳐 고향을 향해 날아갔다. 왕차중의 화신은 고향에 깃털 두개와 붓 한자루를 떨어 뜨렸는데 두개의 깃털은 대핵산(大翮山)과 소핵산(小翮山), 즉 지금의 대해타산(大海陀山)과 소해타산(小海陀山)이 됐다. 그리고 한자루의 붓이 신필봉이 됐다.

번역/편집: 조옥단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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