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음악] 안승필 현대음악 작곡가와 “아리랑”(1부)

2018-11-26 16:10:53 CRI

2018년 11월 24일 중국음악

[현장 아리랑 연주 깔며~]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국음악에서 인사드리는 임봉해입니다.

프랑스 파리와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안승필 작곡가.

1993년 상해음악대학 학생시절 이미 아테네 국제 올림피아 작곡 콩클을 시작으로 각종 국제대회에서 다수의 교향곡, 실내악 및 전자음악 작품으로 수상한 바 있고요. 유네스코의 국제음악포럼(1996년)에서 세계 6대 청년 작곡가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 개막식 때,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그의 교향곡 ‘결(树之脉)'이 연주되기도 했습니다.

상해음악대학 교수, 상해음악대학 전자음악센터 예술감독, 프랑스 라디오방송국 연구원, 독일 학술교류센터 상임작곡 등을 역임했었는데요.

지난 13일 베이징 음악홀에서 열린 중국 국립교향악단과의 의미있는 협연을 위해 11월 8일 귀국했습니다.

귀국 이튿날 본 방송국 특별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안승필 작곡가와의 인터뷰 내용과 그가 편곡한 첼로협주곡 “아리랑”을 1,2부로 나뉘어 중국음악을 통해 방송됩니다. 여러분들의 애청을 바랍니다.

[간주]

기자: 안녕하세요.

안승필 작곡가(이하 작곡가로 약칭): 안녕하세요. 안승필입니다.

기자: 주로 파리, 베를린 등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중국은 얼마만인가요?

작곡가: 저는 중국에 자주 옵니다. 여름방학에도 중국에서 여행하고 가족은 베를린에 있고 아이들도 독일에서 프랑스학교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기자: 상해는 자주 가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베이징은 얼마만인가요?

작곡가: 베이징은 2년만인 것 같습니다. 제가 상해에서 교수할 때 음악회 등으로 자주 왔었는데 지난해 상해를 떠나면서 2년정도 된 것 같네요.

기자: 독일 베를린과 베이징은 시차가 7시간 정도 되는데요. 어제 금방 도착하셔서 아직 시차적응이 잘 안되시겠는데요.

작곡가: 어제 저녁에 푹 잤습니다(웃음) 제가 중국에서 15년간 교수생활했는데 그때 외국에서 유학생활하던 중국인 연구원들을 많이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때 당시 베이징에는 장강학자(长江学者)가 있었고 상해에는 포강학자(浦江学者) 가 있었는데 저는 포강학자신분으로 왔습니다. 저는 소리학 아쿠스티 뮤직쪽으로 와서 연구원도 꾸리고 15년간 교학했습니다. 1년에 4개월씩. 상반년 2개월, 하반년 2개월씩 교학했습니다. 연구실 두개를 만들었습니다. 남창대학 소리연구원과 상해음악대학 소리연구원을 만들었습니다. 정부에서 많은 지지를 주었습니다. 상해에서 150여명 학생을 양성해냈습니다. 대학원생, 박사생을 양성했습니다. 지금도 졸업을 앞둔 박사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금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문화라는 것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15년간 제가 중국의 발전을 위해 응당한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작곡가님의 어릴적 이야기부터 들어볼까요. 흑룡강성 연수에서 태어나 상해음악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길에 나섰는데 어릴 때부터 음악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셨나보네요.

작곡가: 저는 동북의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지금 중국의 젊은이들이 하고 있는 예술과도 좀 다릅니다. 제가 이번에 “아리랑”을 재편성했는데. 저는 현대작곡가입니다. 작곡가는 사실 구조적인 작업을 합니다. 구조가 없는 것을 새롭게 창조하고 구조가 있는 것을 파괴하고 그리고 세상에 없는 언어를 새롭게 만들고 기호를 새로 만드는 작업을 합니다. 이것이 작곡가의 임무입니다.

기자: 없던 것을 새롭게 창조하고 새로운 도전을 계속 하는 직업이지요.

작곡가: 저는 그런 작업을 하고 있고 세계의 이러한 시장 속에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금 다르죠. 하지만 모두 작곡가입니다. 대중음악, 선율음악을 써도 작곡가이고 저희처럼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사람도 작곡가입니다. 성학이라고 하죠. 이는 모두 작곡가라고 합니다. 범위가 다를 뿐입니다. 저는 이번에 이러한 범위에서 살짝 고전으로 들어와서 작업을 했습니다.

기자: 어릴 때부터 소리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셨나봐요.

작곡가: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 자연에서 자랐습니다. 이런 것이 저의 창작과 저의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기자: 대자연의 하모니가 무엇보다 아름답잖아요.

작곡가: 그리고 저는 중국 대륙에서 최고 교육을 받았고 프랑스에 가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재작년 독일 국영방송과 인터뷰할 때도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제가 살아온 환경은 저의 창작 범위를 더욱 넓게 한 것 같습니다.

기자: 창작 범위 뿐만아니라 무대도 더욱 큰 것 같습니다. 상해음악대학을 졸업하고 1994년에 파리고등음악학원에 입학했네요.

작곡가: 그렇지요. 상해음악대학을 졸업하고 학교에서 강사로 있었습니다. 관현악 편곡을 했는데 중국에서 아주 유명한 교수님이죠. 양립청(杨立青)교수의 관현악 편곡의 조수로 일 했고 작곡 교수님 조효생 (赵晓生)의 조수로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유학계획이 없었는데 영국의 유명한 작곡가 죠지 벤지민이라는 분이 상해음악대학에 와서 저의 작품을 들어보고 “더 큰 세상에로 나아가길 바란다. 어린 나이에 교편 잡기가 아깝다”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양립청 교수님이 그를 보고 누구를 찾아가면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제바 그리제이를 찾아가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죠지 벤지민이 바로 파리 국립음악학원을 졸업한 분입니다. 제바 그리제이와 동창이었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이끄는 80년대 작곡가입니다. 그래서 제가 작품을 보냈습니다. 1차에서 통과되었다고 면접오라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가게 되었습니다. 가서 보름동안 파리음악학원에서 시험을 봤습니다. 한 과목 시험이 12시간 입니다. 나오지 못하고 방에 갇혀서 12시간씩 시험을 봅니다. 이렇게 2주간 시험을 봤습니다. 세계적으로 1년에 네명 정도 뽑습니다. 이렇게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기자: 세계적으로 1년에 4명만 뽑는 학교에 입문하게 되었네요. 대단합니다. 지금 이야기는 담담하게 쉽게 얘기를 하셨는데 사실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언어도 그렇고요.

작곡가: (웃음)그렇습니다. 언어는 지금도 많이 힘듭니다. 왜냐면 접하는 언어가 많고 이번에도 제가 “아리랑”을 우리 언어로 풀었지만 기호를 민족의 생각으로 풀었지만 중국어로 번역하니 그 의미가 잘 전달이 되지 않더라고요. 참 희한한 일이더라고요. 하다하다 안되서 상해에 있는 한국 대사관 전문 번역인원에게 맡겼는데 그래도 안되더라고요. 언어적 차이가 많더군요.

[공연 현장 박수소리+”아리랑”첼로협주 한토막~]

지금까지 프랑스 파리와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안승필 작곡가의 인터뷰 제1부를 보내드렸습니다. 다음주 같은 시간에 2부가 방송됩니다.

애청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진행에 임봉해 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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