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앤 이슈] 소강촌, 산업발전으로 면모 일신

2018-11-02 16:47:14 CRI

아:40년전, 안휘성(安徽省) 봉양현(鳳陽縣) 소강촌(小崗村)에서 성세호대한 중국 농촌개혁의 붐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중국의 개혁개방 진척에 심원한 영향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난날 중국의 수많은 농촌들과 마찬가지로 발전중 곤경에 처했던 소강촌은 오늘날 산업발전의 길을 개척해 변모를 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안휘성 봉양현 소강촌의 이야기로 준비해 봤습니다. 오늘도 강옥 기자와 함께 합니다. 어서오세요.

강:안녕하세요? 강옥입니다.

아:앞에도 언급했다 싶이 40년전, 소강촌에서 중국 농촌개혁의 서막을 열지 않았습니까? 40년이 지난 오늘, 소강촌 촌민들의 모습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강:네, 요즘 풍수를 맞은 소강촌은 논밭에서 그윽한 벼향기가 풍겨옵니다. 농민들에게 있어서 수확기가 돌아가는 소리만큼 귀맛 당기는 소리는 없을 것입니다. 수확을 앞둔 넓은 논을 보면서 55세 정석병(程夕兵)씨의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납니다.정석병 농민은 봉양현에서 소문난 알곡대규모재배호인데요, 최근 몇년간 그는 농민들로부터 30여 헥타르에 달하는 경작지를 양도받았습니다. 토지이전비용과 재배원가가 증가하면서 정석병 농민의 압력도 따라서 커졌다고 합니다.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토지이전 가격으로 보면 헥타르당 1 2천원을 지불해야 합니다. 자연재해가 생기면 헥타르당 15만원 정도를 손실 봅니다. 대규모 재배호나 토지를 이전 받은 사람들은 리스크가 큽니다."

아:40년전,소강촌의 농가 18가구가 도급제 계약서에 손도장을 찍으면서 중국 농촌개혁의 서막을 열었는데요, 하지만 수많은 중국농촌들과 마찬가지로 소강촌 역시 1990년대 후기부터 발전곤경에 빠졌습니다. 이른바 "배불리 먹는 문제는 해결했지만 20여년간 치부의 길에 들어서지 못한"경우가 발생했다고 하네요.

강:그렇습니다. 소강촌 인근의 공사장에 와 공장을 세운 판판(盼盼)식품그룹 채금안(蔡金垵) 이사장은 한마디로 그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향촌진흥에서 보편적으로 산업고리가 취약합니다. 강유력한 산업의 지지가 없으면 투자는 부진하기 마련입니다."

아:사실상 산업발전과 창업에 따른 수입증대는 소강촌 촌민들의 오랜 염원입니다. 엄여산(嚴餘山) 촌민의 아버지인 엄굉창(嚴宏昌) 촌민이 바로 40년전 손도장을 찍으며 도급제에 앞장섰던 사람들 중 한사람인데요, 개혁붐과 더불어 1992년 엄여산 촌민은 가장 먼저 마을을 벗어난 젊은이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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