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앤 이슈] 녕하회족자치구 설립 60주년을 말하다

2018-09-27 15:51:55 CRI

아:1958년 10월 25일 정식 설립된 녕하회족자치구가 올해로60주년을 맞았습니다. 지난 60년간 녕하 여러 민족 인민들은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노력으로 황량한 사막을 오아시스로 변모시켰으며 공업의 무에서 유를 실현하고 석탄화학공업을 주체로, 여러 가지 신형 산업을 함께 추진하는 발전의 새 국면을 열었습니다. 지난 60년간 녕하의 발전과 변화에 대해 이 곳 주민들은 너도나도 엄지를 내들고 있습니다. 오늘은 설립 60주년을 맞는 녕하회족자치구로 여러분을 안내할가 합니다. 오늘도 강옥기자와 함께 합니다. 어서오세요.

강:안녕하세요? 강옥입니다

아:육십갑자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지난 60년간 녕하는 큰 변화와 발전을 이룩했다고 하는데요, 수많은 스토리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죠?

강:그렇습니다. 녕하회족자치구 은천시(銀川市) 서남부에 위치한 하란산(賀蘭山) 기슭에는 민녕진(閩寧鎭)으로 불리는 향진이 있습니다. 20 여년전 이곳은 녕하 서해(西海)의 가물고 물이 부족한 지역으로 꼽혔으며 주민들의 생활은 극도로 가난했습니다. 해국보(海國寶) 민녕진 원륭촌(原隆村) 촌민은 그 시절을 이렇게 떠올립니다.

 " 곳은 고향의 동굴집입니다. 식구가 어두컴컴한 동굴집에서 생활했습니다. 안쪽의 동굴에는 알곡을 저장했는데 일년가야 몇주머니 되지 않았습니다. 생활하고 먹고, 소비하는 모두가 몇주머니 되지 않는 알곡에 의거해야 했습니다."

아: 마을 이름에는 남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구요?

강: 그렇습니다. 1996년, 중국공산당 복건성 위원회 부서기였던 습근평 동지가 복건의 녕하 가난구제 지도소조 조장을 맡았습니다. 두번째 해 습근평 동지는 녕하에서 조사연구 시 복건과 녕하의 약칭으로 명명된 이민 개발구를 건설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민녕촌"의 이름은 이렇게 탄생된 것입니다.

아:22년의 발전을 거쳐 민녕촌은 풀 한포기 자라지 않던 빈곤한 모래톱으로부터 알곡이 넘쳐나는 민녕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진 농민들의 연간 수입도 이개축 이전의 인민폐 500원으로부터 지금은 1만 여원으로 늘어 전국 동서부 가난구제 협력의 시범으로 되었습니다.

강:그렇습니다.민녕진의 변화는 중국 인민이 녕하의 제반사업을 지원한 하나의 축소판이라 할수 있습니다. 자치구 설립후 전국각지에서 공업과 농업, 교육, 보건 등 각 영역의 인재들이 대거 녕하에 모여 열정과 땀방울, 심혈과 청춘을 이곳에 고스란히 바쳤습니다. 이들의 노력으로 녕하의 도시와 농촌은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1958년 12월, 왕덕련(王德連) 씨는 신청과 심사를 거친 뒤 그와 함께 근무하던 근로자 40명과 함께 하북성(河北省) 장가구시(張家口市)의 석탄기계공장으로부터 녕하에 와 석취산(石嘴山) 광무국 기계수리공장을 세우면서 녕하 공업의 제1세대 건설자로 되었습니다. 왕덕련 씨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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