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용문석굴

2016-09-22 09:30:46

하남(河南)성 낙양(洛陽)시에 위치한 용문석굴(龍門石窟)은 중국 4대 석굴중의 하나로 5세기부터 10세기까지의 문명을 돌에 새겨 오늘날까지 보존하고 있는 중국 석각예술의 보물고입니다.

기원 493년에 북위(北魏) 황제 효문제(孝文帝)가 도읍을 낙양(洛陽)으로 옮긴 후 축조를 시작한 용문석굴은 그 뒤로 서위(西魏), 북제(北齊), 수(隨)조, 당(唐)조, 송(宋)조, 명(明)조 등 역대에 걸쳐 장장 500여년동안 조성을 계속했습니다.

연속시간이 길고 많은 조대를 거친 용문석굴은 대량의 실물형상과 문자자료들로 부동한 측면에서 중국 고대의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 많은 영역의 발전과 변화를 보여주었으며 중국 석굴예술의 혁신과 발전에서 중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용문석굴은 2000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용문석굴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화엄경(華嚴經)에 근거해 조성한 마애식 불단은 기품있고 비범한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지극히 풍부하고 생동한 미술기법으로 군체형상을 보여주었으며 불의 세계에 있는 상서로운 기운과 이상적인 경지를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용문석굴의 불상들은 대당제국의 강대한 물질적인 역량과 정신역량을 구현했으며 당조 조각예술의 최고 성과를 보여주었다. ”

음악

용문석굴에서 오늘 날까지 남아 있는 석굴은 주로 북위와 당조 두 시대에 조성한 것입니다. 전한데 의하면 당조때는 풍요롭고 즐거운 생활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평화로워 그 때 조성한 보살은 주로 자애로운 얼굴에 즐거운 미소를 띤 보살들입니다. .

그런 조각들속에 서있으면 옛날 번화한 당조의 모습이 엿보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찾아드는 중심의 나라-번화한 당조가 하나 하나의 조각물에 생동하게 구현되어 있습니다. 용문석굴을 대표하는 루사나(盧舍那) 대불도 당조의 여황제 무측천(武則天)의 모양을 본땄다고 합니다.

동서 양쪽에 두 산이 마주하고 그 사이로 이수(伊水)강이 흐르는 이 곳은 멀리서 보면 천연적으로 형성된 문을 방불케 합니다. 그래서 지명도 이궐(伊闕)로 불리웠는데 수양제(隨煬帝)가 용문으로 개명했습니다.

용문은 마침 수나라 도읍인 낙양의 남쪽에 위치해 낙양성의 성문인 정정문(定鼎門)이 용문과 가까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수양제는 정정문을 나와 용문으로 향한다는 의미로 이궐이라는 지명을 용문으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이수강가의 청석을 밟으며 걷노라면 벼랑에 크고 작은 불단이 즐비한 것이 보입니다. 반천년의 세월을 거친 용문석굴에는 불단 2100여개, 불상은 10만여기, 비석조각은 3600여점이 있습니다.  

불상은 혹은 입상이거나 와상이며 심지어 걷거나 하늘을 나는 모양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동한 불상을 보면서 장인들의 기법에 감탄하는 동시에 세월속에서 스러져가는 불상에 안타까움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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